"중동 사태 영향 제한적⋯장기전 시 조달ㆍ소비심리 위축 우려"

최근 글로벌 반도체시장이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열풍에 힘입어 전례 없는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 역시 그 수혜를 톡톡히 입고 있지만 내년 하반기부터는 AI 투자의 수익성 검증과 빅테크의 자금 여력 등 복합적인 변수에 따라 유동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12일 발표한 '글로벌 반도체 경기 확장세 지속가능성 점검' 보고서를 통해 "최근의 반도체 경기는 AI 학습 및 추론을 위한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발하며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범용 D램 수요가 동시에 급증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은 이번 반도체 호황기가 과거 스마트폰 대중화(2013~15년)나 클라우드 확대(2017~18년) 당시보다 더 강력하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주욱 한은 국제무역팀 과장은 "한국 수출은 메모리 산업의 독보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AI 패러다임 전환의 수혜를 크게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내년 상반기까지 확장세가 이어지겠지만, 이후에는 AI 활용 범위 확대 여부 등에 따라 사이클의 지속성이 매우 유동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산업의 최대 특징은 '수요 대비 공급이 더디다'는 점이다. 과거 수요 증가에 맞춰 시설 확충이 빠르게 이뤄졌으나 이번에는 HBM의 높은 공정 난이도와 신규 장비 도입 필요성으로 양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있어서다. 특히 기존 범용 D램 라인을 HBM으로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공급 병목 현상이 수급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진단이다.
문제는 내년 하반기부터다. 한은은 반도체 경기 확장세를 위협할 첫 번째 변수로 빅테크 기업들의 ‘자금 확보’ 능력을 꼽았다. 그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빅테크들은 기존 사업에서 벌어들인 현금으로 AI에 투자해왔으나, 최근 투자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커지면서 내부 재원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주 과장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빅테크들은 자사주 매입을 줄이는 대신 회사채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으며, 일부 기업의 신용위험(CDS 프리미엄)이 상승하는 등 시장의 경계심도 커지고 있다"며 "만약 금융 여건이 악화되어 사모신용 자금 유입이 끊길 경우, 현재 진행 중인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되거나 대출 상환 압박이 커지며 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냉각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향후 반도체 사이클 향방을 결정할 5대 핵심 요인으로는 △AI 투자의 수익성 검증 시기 △빅테크의 자금 확보 여부 △AI 모델의 기술 효율성 진전 △메모리 업체의 증설 속도 △중국 기업의 추격 등이 꼽힌다. 현재는 주도권 경쟁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고 투자하는 단계지만 내년 이후 시장 관심이 수익성으로 옮겨갈 경우 인프라 투자 속도는 조절될 수밖에 없다. 내년 이후 국내 기업들의 신공장 증축(SK하이닉스 용인캠퍼스, 삼성전자 평택5공장 등)으로 수급 여력이 충족될 예정이다. 중국 기업들의 공격적인 증설도 부담이다. 중국의 D램 공급 증가 속도는 국내 기업보다 3배 이상 빠를 것으로 예상돼 범용제품의 가격 하방 압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것이란 시각이다.
한은은 최근 불거진 중동전쟁이 반도체 경기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일단 제한적이라고 봤다. 유가나 금리 상승에도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미루는 움직임은 아직 포착되지 않고 있어서다. 다만 전쟁 장기화로 에너지 및 주요 소재(브롬, 헬륨 등) 조달에 차질이 생기거나 글로벌 소비 심리가 위축될 경우 스마트폰, PC 등 소비자용 IT기기 수요가 먼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 과장은 "전쟁 상황 및 금융경제 파장이 심각해질 경우에는 AI 투자의 수익성 검증 시기가 앞당겨지거나 빅테크의 자금확보에 다소 어려움이 발생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면서 "중동산 에너지, 소재, 장비의 조달차질이 반도체 공급망에 예상치 못한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