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로 인한 비용 상승, AI 전력 수요 급증, 핵심 광물 병목 등 한계 지적
단순한 '에너지 추가' 넘어 수요 감축 동반한 실질적 '에너지 전환' 주문

미국과 이란 전쟁 여파로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면서 재생에너지가 에너지 안보를 위한 핵심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높은 자본 조달 비용, 인공지능(AI) 산업 팽창에 따른 전력 수요 급증, 중국 중심의 핵심 광물 공급망 제약 등 구조적 한계로 인해 즉각적인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어렵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산업연구원은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중동 전쟁은 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할 것인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월 28일 촉발된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카타르가 라스라판 가동 중단에 따른 가스 계약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면서 화석연료의 지정학적 취약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으며, 가스 가격은 유럽에서 40% 이상, 아시아에서는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태양광과 풍력은 봉쇄되거나 무기화될 수 없으며 화석연료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에너지 안보와 국가 안보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보고서는 이러한 위기가 재생에너지 전환으로 곧바로 이어지기 어려운 구조적 제약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화석에너지 가격 상승이 재생에너지 투자 비용과 공급망 부담을 동시에 키운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급등한 에너지 가격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뒤따른 금리 인상은 자본 조달 비용에 민감한 재생에너지 투자를 상대적으로 위축시킨다"며 "실제로 금리가 2% 상승할 때 가스 발전 비용은 11% 오르는 데 그치지만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은 20%나 뛰며 디젤 가격 상승은 재생에너지 설비 건설 현장의 중장비 운영 비용을 전쟁 이전 대비 35%나 증가시켰다"고 밝혔다.
위기가 오히려 다른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부추기는 역설적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해협 봉쇄 이후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늘렸고, 아시아와 유럽의 발전용 석탄 선물 가격은 각각 13.2%, 14.2%가량 급등했다. 한국 역시 석탄 화력 발전량 상한을 해제한 상태다.
나아가 'AI 투자 경쟁'으로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2030년 400테라와트시(TWh) 이상으로 두 배 이상 팽창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전력망 인허가를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재생에너지 대신 빠르고 안정적인 가스 발전이 주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점도 제약 요인이다.
기존 '연료 집약적' 발전에서 '광물 집약적' 시스템으로의 전환에 따른 핵심 광물 병목 현상도 걸림돌이다.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 터빈,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려면 구리와 리튬, 희토류 등 막대한 양의 핵심 광물이 필수적이다. 중국이 에너지 전략 광물 20개 중 19개의 제련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 과거 수출 통제 사례와 같은 '광물 무기화' 리스크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이러한 한계들로 인해 세계는 풍력과 태양에너지를 역대 최대로 보급하고 있음에도 석유·석탄 소비 역시 동시에 최대 수준을 기록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즉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를 근본적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에너지 수요 증가를 뒷받침하는 '에너지 추가' 현상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산업연구원은 장기적 안목의 다각적인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박유미 산업연구원 산업탄소중립연구실 연구원은 "우선 차액결제 계약 등을 통해 재생에너지 투자의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전력망을 포함한 시스템 인프라 투자를 선제적으로 늘려야 한다"며 "진정한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건물·산업 부문의 에너지 효율 기준 강화와 대중교통 투자 등 실질적인 수요 감축 및 화석연료 사용 억제가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또 "특정 지역과 자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광물 조달을 위한 외교 및 국제 공조, 순환경제 체계 구축, 에너지원 다변화를 병행하는 현실적이고 균형감 있는 안보 전략이 시급하다"며 "재생에너지로 완벽히 대체하기 어려운 항공·해운 원료이자 전력망에 유연성을 제공하는 천연가스 등 필수 화석연료의 공급 안정성도 전환기 동안 지속적으로 철저히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