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각종 석유화학제품 전면 중단 위기
원전 재가동에 脫석탄도 재고해야

한 달을 넘긴 중동발 에너지 위기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원유 수입량의 70%를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다. 단순히 기름값이 치솟는 ‘에너지 위기’만 걱정할 일이 아니다. 종량제 봉투에서 포장재·빨대·윤활유·주사기 등으로 빠르게 번지고 있는 ‘공급망 붕괴’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소비 억제’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오늘날의 현실은 1973년과 1979년의 ‘석유파동’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과거에는 중동산 원유의 공급 중단으로 발생한 휘발유·경유가 문제였다. 그런데 이제는 중동 국가들이 공급하고 있는 원자재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동 국가들이 그동안 끌어모은 ‘오일머니’로 다양한 산업을 일으킨 결과다. 물론 인공지능·양자·바이오와 같은 첨단 산업은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값싸고 풍부한 ‘화석에너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전통적인 굴뚝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중동 산유국이 가장 먼저 눈독을 들인 것은 정유·석유화학산업이다. 땅에서 퍼 올린 원유를 싼 값에 수출하는 대신 원유를 정제한 석유제품으로 더 큰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1982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루와이스 정유공장은 세계 4위 규모로 매일 84만 배럴의 원유를 정제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도 대규모 정유·석유화학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6월 완공을 노리고 있는 울산의 샤힌프로젝트에도 아람코가 9조 원을 투자했다.
우리도 중동의 정유·석유화학산업에 상당한 규모의 기술 투자를 했다. 현재 우리가 소비하는 나프타의 35%를 중동에서 수입하고 있는 것도 그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석유화학제품인 메탄올 시장의 35%와 폴리에틸렌 시장의 15%도 중동이 차지하고 있다. 정유 공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인 황(黃)의 45%도 중동산이다.
우리가 에너지 과소비와 환경 오염을 이유로 2012년에 완전히 포기해 버렸던 ‘요소’ 산업에도 적극적으로 투자했다. 지천으로 널려있는 천연가스의 개질(改質)로 생산한 ‘수소’를 이용해서 암모니아와 요소를 대량으로 생산한다. 국제 시장에 공급되는 암모니아의 45%와 요소의 30%가 중동산이다. 2021년 중국의 요소 수출 제한 이후 중동산 요소의 수입에 정성을 들인 결과다. 중동 전쟁으로 ‘요소수 대란’을 걱정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은 차량용 요소수가 아니라 농사에 써야 하는 비료용 요소다.
그뿐이 아니다. 천연가스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산물인 헬륨의 39%도 카타르에서 생산된다. 우주의 24%를 차지할 정도로 흔한 원소인 헬륨은 지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희귀 원소다. 대기 중에는 5.2ppm이 존재할 뿐이다. 1903년 천연가스에 1.8%의 헬륨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아낸 미국이 그동안 독점하고 있던 헬륨 시장을 카타르가 적지 않게 잠식해 버린 것이다.
전 세계에서 생산하는 알루미늄의 9%도 중동에서 생산한다. 중동의 값싸고 풍부한 천연가스로 생산한 전력이 핵심이다. 그런데 중동 최대로 알려진 UAE의 EGA(에미리트 글로벌 알루미늄)과 바레인의 Alba(알루미늄 바레인) 제련시설이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심하게 파괴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공급하고 있는 물량을 제외하면 세계 시장에서 알루미늄 공급량은 2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리에게 1970년대의 석유파동도 힘겨웠다. 그러나 1970년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300달러 수준이었다. 자동차도 많지 않았고, 비닐·플라스틱을 비롯한 화학제품에 대한 의존도도 높지 않았다. 그런데도 제2차 석유파동 직후인 1980년 1분기에는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1.6%의 경제성장률과 29%의 물가상승률을 기록할 정도의 아픔을 겪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의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중동발 에너지·공급망 위기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욱 취약해졌다. 매달 8000만 배럴의 원유와 400만 t(톤)의 나프타를 수입해야 하는 형편이다. 실제로 국내 원유 재고가 20% 이상 줄었고, 석유화학업계의 구조조정도 길을 잃어 버렸다.
이 기회에 ‘국산’이라는 어쭙잖은 이유로 태양광·풍력을 서둘러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태양광 패널과 풍력 블레이드는 대부분 중국산이다.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때문에 천연가스 소비가 늘어나는 것도 문제다. ‘비닐’ 포장을 ‘종이’로 바꾸면 된다는 착각도 버려야 한다. 가동률을 60%까지 떨어뜨린 원전을 재가동하고, 섣부른 ‘탈석탄’도 멈출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