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종전 90달러, 봉쇄 장기화 117달러, 에너지 시설 타격 174달러 전망
나프타·LNG 수급 차질 땐 물가·경상수지·산업 원가 전반에 충격 확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에너지 패권주의’가 한국 산업계의 기초 체력을 악화시키고 있다. 중동의 포성이 멈춰도 배럴당 90달러 선이 새로운 기준으로 굳어진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우리 경제가 ‘고비용 구조’의 덫에 갇힐 위기에 직면했다. 수입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쥔 한국으로서는 인플레이션 전이와 경상수지 악화를 막기 위한 국가 차원의 에너지 수급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진행한 대국민 연설에서 “2~3주 동안 대대적으로 타격해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을 것”이라며 “필수 인프라와 발전소를 타격할 것”이라고 강경한 발언을 했다. 원·달러 환율은 다시 1520원대로 올라섰고, 국내외 증시도 약세로 돌아섰다.
이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트럼프 행정부가 전쟁을 끝내더라도 한국의 에너지 위기 상황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원은 미·이란 전쟁 전개를 △조기 종전·휴전 △호르무즈 봉쇄 장기화 △에너지 시설 타격·확전 등 3개 시나리오로 나눠 분석했다. 세 경우 모두 국제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63달러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 결론이다. 연구원은 2027년 4분기 기준 유가를 조기 종전 때 90달러, 봉쇄 장기화 때 117달러, 에너지 시설 타격 때 174달러로 각각 제시했다.
핵심은 종전 여부가 아니라 공급망 훼손의 지속성이다. 조기 종전이 현실화하더라도 에너지 시설 복구 지연과 비축 경쟁, 우회 운송 비용 확대가 겹치며 전쟁 이전보다 높은 가격 프리미엄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KIEP는 조기 종전 시에도 전쟁 전 대비 43% 높은 유가가 지속한다고 봤다. 현재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약 108달러 수준으로 봉쇄 장기화 구간에 근접해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이미 정유업계는 5월 이후 재고 부족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이유는 높은 중동 의존도다. 한국의 나프타 수입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 인근 중동 주요국 비율(2023~2024년 기준)은 평균 34.4%다. 아랍에미리트(UAE) 11.3%, 오만 5.8%, 카타르 5.5%, 쿠웨이트 4.6%, 이라크 3.3%, 사우디아라비아 2.2%, 바레인 1.7% 순이다. 호르무즈 봉쇄나 걸프 지역 시설 피격은 곧바로 정유·석유화학 원재료 수급 불안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카타르 라스 라판 가스 단지가 피격될 경우 나프타 가격은 전월 대비 약 49% 급등하고, 카타르 액화천연가스(LNG) 수출량은 약 17% 감소할 수 있다. 일부 계약에 대한 불가항력 선언 가능성과 함께 시설 복구에 3~5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충격은 단발성이 아니다. 석유화학 업계는 나프타 수급 불안으로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률을 60%대까지 낮춘 곳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에너지 수입 단가가 고착되면 제조업 원가, 물류비, 공공요금, 소비자물가 전반에 상방 압력이 지속된다. 결국 ‘전쟁만 끝나면 정상화된다’는 기대보다는 ‘고유가 뉴노멀’에 맞춘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송하윤 KIEP 부연구위원·강문수 연구위원은 “미국산 원유와 비중동 물량 확보, 전략 비축 확충, 석유화학 원료 다변화, LNG 계약 안정성 점검, 에너지 가격 전이 관리가 동시에 필요하다”며 “전쟁이 끝나도 유가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위기의 본질은 전쟁이 아니라 비용 구조의 변화”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