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텔레콤 30분, KT 80분. 지난달 말 정기 주주총회가 진행된 시간의 격차는 사실상 기업이 쌓아온 신뢰의 결과였다. 대표 등 사내이사와 사외이사 선임, 정관 일부 변경, 재무제표 승인 등 두 통신사의 안건은 비슷했다. 그럼에도 KT 주주총회가 50분 더 길어진 건 해소되지 않은 거버넌스 리스크 때문이었다.
지난달 26일 유영상 전 SKT 대표가 진행한 주주총회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원만하게 끝났다. 모든 안건은 이견 없이 박수로 승인됐다. 신임 대표이사와 사외이사가 자리해 주주에게 인사를 전했다. 정재헌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가입자 순증·점유율 40% 회복 목표를 밝혔다. 해킹 사고를 가장 먼저 겪은 SKT는 미래를 말했다.
반면, 31일 KT 주주총회에선 김영섭 전 KT 대표의 보고·의결 사항마다 이의 제기를 위한 “의장!”이 터져나왔다. SKT와 달리 KT는 주주가 손을 들어 “저는 이번 안건에 찬성합니다”라고 말한 이후에 박수로 승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에 주총장 뒤편에선 “다 직원들 아니냐” “자기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불만도 흘러나왔다. 한 주주는 “다른 목소리도 들어보라”고 호소했다.
특히 무자격 논란으로 사퇴한 조승아 전 사외이사의 보수 환수 문제를 두고 공방이 이어졌다. KT의 사외이사는 연간 1억원 상당의 보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격 사유가 있던 1년 9개월 동안 받은 급여를 환수했느냐는 질문에 김 전 대표는 “근무를 했기 때문에 환수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주주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문제의 핵심은 거버넌스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이사회가 그대로 유지된 것이다. 이사회는 이승훈 사외이사의 인사·계약 청탁 의혹, 김성철 사외이사의 이해충돌 의혹 등으로 신뢰에 타격을 입은 상태다. 주주들이 이사회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자 김용헌 이사회 의장은 “충정을 잘 느꼈다”며 “이사회에 전달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내놨다.
주주총회 직후 박윤영 신임 대표는 대규모 조직 개편과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임원 조직을 30% 축소하고 최고경영자(CEO) 직속 부서를 전면 교체했다. 하지만 변화는 실행 조직에만 머물렀다. 정작 주주들이 문제 삼은 이사회는 그대로였다.
사외이사는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 주총에서 주주들이 던진 질문은 달랐다. 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오히려 감시의 대상이 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거버넌스 리스크는 견제 장치가 흔들리면 해소될 수 없다. 신뢰는 말이 아니라 책임지는 행동에서 시작된다. KT가 신뢰를 회복하려면 과거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사회 신뢰부터 다시 세우는 것이 시작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