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ㆍ농촌 중심에 선 여성⋯경영 주체로 키운다

기사 듣기
00:00 / 00:00

공동경영주·농협이사회·건강검진까지…여성농업인 정책, 지위·성장 중심 전환
농한기 겸업 허용·AI 교육·틈새돌봄 확대…현장 체감형 지원책도 구체화
고령화·인구감소 속 커진 여성 역할…관건은 현장 안착과 지자체 실행력

▲여성농업인 권익 증진 4대 전략 (그래픽=신미영 기자)

여성농업인이 전체 농업인의 절반을 넘어섰다. 하지만 현장의 인식과 제도는 여전히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여성은 농업 생산ㆍ경영, 가공ㆍ유통, 돌봄과 지역공동체 유지까지 떠받치는 핵심 주체지만 농촌 현장에서는 여전히 ‘남편 일을 돕는 사람’이나 ‘보조 인력’의 이미지가 강하다. 농촌 고령화와 인구감소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여성 역할 확대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마련한 ‘제6차 여성농업인 육성 기본계획(2026~2030년)’은 이런 현실 인식 위에서 출발한다. 여성농업인을 복지 대상이 아닌 농업·농촌의 핵심 경제주체로 다시 세우는 정책 전환에 나선 것이다. 이번 계획은 형식적 참여 확대에서 실질적 지위 향상으로, 개별 사업 중심에서 정책 거버넌스 구축으로, 보호·복지 중심 지원에서 핵심 경제주체 성장 지원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이 특징이다. 여성농업인을 단순 지원 대상이 아닌 농업과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떠받치는 주체로 재정의하겠다는 뜻이 담겼다.

여전한 낮은 지위…농촌 여성의 현실

▲양양군에서 진행된 여성 친화형 농기계 교육 현장 모습. (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농식품부의 정책 전환 배경은 분명하다. 2024년 기준 농가인구 200만3520명 중 여성은 102만4585명으로 51.1%를 차지했다. 그러나 농촌 지역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낮다고 보는 인식이 여전하고 여성농업인이 꼽는 가장 큰 어려움도 농사일 체력 부담과 가사·농사 병행에 집중돼 있다. 농업노동과 돌봄노동이 겹치는 구조 속에서 여성은 농장의 핵심 인력이면서도 의사결정과 제도적 권한에서는 상대적으로 뒤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공동경영주 제도는 이런 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부부 공동경영체 안의 여성농업인을 경영 주체로 인정하기 위해 2016년 도입됐지만 실제로는 경영주의 배우자인 공동경영주가 일시적으로 취업해도 농업인 자격을 잃는 구조였다. 경영주는 겸업을 해도 농업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데 공동경영주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나 국민연금 사업장가입자가 되는 순간 경영체 등록이 취소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농한기에 단기 일자리로 생계를 보완해야 하는 농촌 현실과 제도 사이에 괴리가 있었던 셈이다.

이는 단순한 권리 논의를 넘어 농촌의 지속가능성과도 맞닿아 있다. 농가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여성의 생산·경영 참여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농업 현장의 인력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여성농업인 정책은 복지 차원을 넘어 농업 기반 유지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부가 6차 기본계획을 통해 여성농업인 정책 전환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동경영주부터 AI 교육까지…6차 계획의 핵심 변화

▲제6차 여성농업인 육성 기본계획 인포그래픽 (자료제공=농림축산식품부)

제6차 여성농업인 육성 기본계획은 4대 전략과 11대 정책과제 아래 여성농업인의 지위와 성장 기반을 함께 손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법적·사회적 지위 신장과 성평등 농촌 실현을 위해 공동경영주 제도 개선, 농협 이사회 성별 규정 추진, 마을 이장 선출 방식의 성평등 확산, 여성친화농촌 모델 검토 등이 담겼다. 여성의 참여 기회를 넓히는 수준을 넘어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실질적 권한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가장 상징적인 변화는 공동경영주 제도 개선이다. 앞으로는 공동경영주가 일시적으로 취업하더라도 최근 1년간 근로소득이 2000만원 미만이고 연 90일 이상 영농 종사가 확인되면 농업인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농한기 겸업이 불가피한 농촌 현실을 반영해 여성농업인의 실질적 지위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친 것이다.

정책 거버넌스 구축도 이번 계획의 주요 축이다. 농식품부는 농촌여성정책과 신설을 계기로 지방정부 전담부서·인력 확보를 추진하고, 중앙·지방·민간이 참여하는 정책협의체를 신설해 정례적으로 현장 의견을 반영할 계획이다. 여성농업인 실태조사도 표본 확대, 조사항목 개선, 조사 주기 단축 등을 통해 정책 통계 기반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동안 개별 사업 중심으로 흩어졌던 정책을 실행 체계와 성과관리 체계 안으로 묶겠다는 의미다.

핵심 경제주체로서 성장 지원 방안도 한층 구체화됐다. 가족경영협약 활성화와 시간 탄력적 일자리 발굴, 농산물 가공·창업 보육, 유통·마케팅 역량 강화, 인공지능(AI) 등 디지털 전문 교육과정 신설이 대표적이다. 공동경영주 제도 개선과 농협 이사회 성별 규정 추진, 정책협의체 신설, 실태조사 개선, 가족경영협약 활성화, 가공·창업 보육, AI 교육, 여성친화형 농기계와 편이·보조장비 보급, 틈새돌봄 도입, 특수건강검진 확대 등이 이번 계획의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여성농업인의 경제 활동을 단순 부업이나 보조 역할이 아니라 독립적 소득 기반 확충으로 연결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도시 청년 여성의 농촌 진입을 돕는 ‘시골언니 프로젝트’와 새일센터 연계 강화도 이런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현장 체감도가 큰 분야는 노동부담 경감이다. 정부는 여성친화형 농기계와 편이·보조장비 개발·보급을 확대하고 웨어러블 근력보조 장비 활용도도 높여 나가기로 했다.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도 확대한다. 검진 연령은 기존 51~70세에서 51~80세로 넓히고 지원 인원도 5만명에서 8만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농번기 새벽·야간 돌봄 공백을 메우는 ‘틈새돌봄’ 도입, 농작업 현장 위생·편의시설 확충도 함께 추진된다.

계획의 성패는 실행…지방과 예산이 관건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월 15일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의료기관인 원광대학교병원을 찾아 '여성농업인 단체장 간담회'를 열고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농림축산식품부)

이번 계획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다. 예를 들어 농한기에 마을 일자리나 단기 근로로 소득을 보완하던 공동경영주가 더 이상 경영체 등록취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새벽 돌봄 공백이 일부 해소되면 여성농업인의 노동시간 배분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다. 여성친화형 장비가 실제 보급과 활용으로 이어지면 반복 작업에 따른 근골격계 부담도 줄일 여지도 있다. 여성의 농업 참여를 ‘희생’이나 ‘보조’가 아니라 제도적으로 인정받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계획의 성패가 결국 지방자치단체 의지와 예산, 전담인력 확보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중앙정부 계획이 현장에서 효과를 내려면 지방정부의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역별 여건 차이가 큰 데다 여성농업인 정책은 돌봄, 복지, 고용, 교육, 농업정책이 겹쳐 있는 분야라 지자체의 조정 능력도 중요하다. 여성친화형 장비 역시 개발 숫자보다 실제 보급률과 활용도, 사후관리 체계가 더 중요하고 정책 거버넌스도 협의체 신설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환류 구조로 작동해야 한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여성농업인 전담부서가 설치된 곳은 충남 아산시와 경남 고성군 2곳뿐인 게 현실이다.

이번 6차 계획은 여성농업인을 바라보는 정책의 시선을 바꾸는 출발점에 가깝다. 여성농업인을 농업·농촌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에 놓겠다는 방향은 제시됐지만 성패는 지자체 실행력과 예산, 현장 체감도를 얼마나 끌어올리느냐에 달려 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여성농업인은 더 이상 ‘보조 인력’이 아니다”며 “여성농업인이 현장에서 체감해 온 불합리를 바로잡고 선언이 아닌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응답하는 것을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아왔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와 조직 개편은 출발선에 불과하다”며 “그 변화가 현장의 삶 속에서 실제 체감되는 성과로 이어질 때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