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클라우드 분야 조달정책 꼬집어
망 사용료·플랫폼 규제도 정면비판

미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발표한 ‘2026년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AI와 클라우드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이다. USTR은 올해 보고서에서 처음으로 한국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칩 및 클라우드 자원 조달 입찰을 문제 삼았다.
보고서는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CSP)들이 한국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및 추가 클라우드 자원 입찰에 참여하려 했으나 국내 입찰자만 허용돼 자국 기업이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국가정보원의 클라우드 보안인증제(CSAP)와 국가핵심기술 보호법을 근거로 한 미국 기업 활용 제한도 비관세 장벽으로 함께 지목됐다.
전통적인 갈등 사안인 망 사용료와 플랫폼 규제의 비판 수위 또한 한층 높아졌다. USTR은 국회에 계류 중인 망 사용료 의무화 법안을 두고 “한국 ISP(통신사)의 독점력을 강화하고 미국 CP(콘텐츠 제공업자)를 차별하는 반경쟁적 조치”라고 못 박았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해 온 ‘플랫폼 경쟁 촉진법(플랫폼법)’에 대해서는 “이러한 방안들은 한국 시장에서 영업하는 많은 미국 기업들에 적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모든 사안이 미국의 핵심 현안은 아니며, 우리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복잡하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국내 AI와 클라우드 등 토종 IT 생태계가 고사할 위기에 처하고, 거부할 경우 농산물과 자동차 등 타 산업군으로 보복이 번질 수 있어서다.
국내 IT 업계는 이번 보고서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포함됐다고 반박한다. USTR의 주장과 달리 미국 CSP도 국내 사업 참여가 보장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AI 컴퓨팅 구축 사업에는 미국의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참여하고 있으며 올해 진행되는 AI 사업에도 해외 사업자가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다.
미국이 ‘자유 무역’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상은 한국의 IT 주권을 미국 빅테크에 종속시키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GPU 수급이 국가 경쟁력이 된 시점에서 조달 방식까지 간섭하는 것은 사실상 한국의 AI 독자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는 입장이다.
특히 역차별에 대한 우려가 크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무역장벽이라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한국의 IT 생태계가 미국산 빅테크에 완벽히 점유당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는 곧 한국이 독자적인 디지털 규범을 세울 수 있는 마지막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다는 위기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만약 여기서 밀린다면 한국은 역차별에 시름하다 미국의 IT 하청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