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같은 강을 건너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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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임선영산부인과의원 원장

두 해 전의 일이다. 너른 창으로 밖을 내려다보니 파스텔 톤 봄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처음 입원했을 때만 해도 꽃망울을 잔뜩 머금고 있던 벚나무가 어느새 팝콘 터지듯 여기저기서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눈부신 봄이었다. 그때 유명 가수가 듀엣으로 부르는 ‘엄마의 봄’이라는 노래가 아련한 음색으로 흘러나왔다. 환한 풍광을 압도하듯 노래는 가슴속 깊이 젖어들었다. 나는 심신이 지친 상태에서 발견된 유방암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었다. 그래서인가? 이 찬란한 봄의 빛깔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서러움으로 다가와 단번에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동안 앞만 보고 치열하게 달려왔는데, 문득 봄의 한가운데 홀로 놓인 기분이었다.

아직 인생 숙제를 다 마치지 못했는데, 나는 과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공연히 걱정이 더해졌다. 몸이 아프면 마음이 약해진다는 그 익숙한 과정을, 겉으로는 태연한 척, 천하대장군처럼 버티고 있었지만, 실은 여느 암 환자들이 겪는 두려움과 흔들림을 조금도 다르지 않게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그 이후 나는 빠르게 진료실로 돌아와 제자리에 앉았다. 얼굴은 푸석하고, 어딘가 부어 있었지만 내가 반듯하게 좌정하고 있어야만 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병원 일만이 아니었다.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여전히 내 앞을 짓누르고 있었다.

어떻게 그 산을 넘었을까? 지금 돌아보면 아득하기만 하다. 그 시간을 지나오게 한 힘은, 어쩌면 진료실 안에서 만났던 암 환자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내가 그들에게서 치유를 받았다. 상심한 얼굴로 앉아 있는 환자들에게 나는 조용히 말했다.

“저도 암을 겪고 있습니다. 벌써 두 번째입니다. 암은… 친구처럼 함께 가야지요.” 그 말을 들은 환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선생님도 암 환자라니… 마음에 큰 위로가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의사와 환자가 아니다. 같은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된다. “저는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세 번째도 겪을 준비는 되어있습니다.” 그 말속에는 두려움과 함께, 미래를 향한 도전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환자들의 질문에 더 제대로 답을 해주기 위해 나는 요즘도 유방암 치료 최신 지견을 숙독하고 있다. 넘어온 산의 높이는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다시 진료실에 앉아 있다. 임선영 임선영산부인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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