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김한진의 시황읽기] 안갯속 호르무즈 ‘골든타임 경제학’

기사 듣기
00:00 / 00:00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

공급망 교란 따른 물가압력 폭발적
수주 내 수습이 세계경제 향방 갈라
새 기회 잡으려면 종전 뒤 대비해야

인류 역사는 기록된 5000년 중 고작 300년 남짓 만이 평화로웠을 만큼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 참혹한 파괴의 기록 위에서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가장 나쁜 평화라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고 설파했다. 오늘날 중동에서 들려오는 포성은 이 격언이 단순한 수사가 아님을 증명한다. 온갖 뉴스와 소음이 난무하는 가운데, 세계 경제는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거대한 병목 구간에 갇혀 신음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있어 호르무즈 해협은 단순한 해로가 아니라 국가의 ‘생명선(Life Line)’ 그 자체다. 우리 원유 수입량의 70% 이상이 이곳을 통과한다. 따라서 이 바닷길의 장기 봉쇄는 단순한 유가 상승의 문제를 넘어, 산업 전반의 가동이 중단될 수 있는 ‘국가적 에너지 비상사태’를 의미한다.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이번 사태의 충격이 1970년대의 두 차례 오일쇼크를 넘어설 수 있다고 경고한 대목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골드만삭스 역시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파손된 공급망 여파로 인해 당분간 유가 하락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신중한 전망을 내놓았다.

공급망 균열은 비단 원유에만 그치지 않는다. 현대 산업의 모세혈관이라 불리는 정밀 소재 분야까지 전방위적 타격이 예상된다. 반도체 공정의 필수 소재인 헬륨부터 가전과 자동차 부품의 원료인 브롬과 알루미늄, 그리고 인류 먹거리의 근간인 비료에 이르기까지 중동발 공급망 차질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교란한다. 해상 및 항공 물류비용의 가파른 상승은 물론이고, 당장 플라스틱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의 공급 부족은 공산품 가격 전반을 압박하며 가계의 실질 소득을 갉아먹고 있다.

여기서 특히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물가 상승의 ‘속도’와 ‘전이 과정’이다. 공급망 교란에 따른 물가 압력은 산술적으로 완만하게 오르지 않는다. 임계점인 ‘골든타임’을 지나면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중간재 가격 상승이 최종 재화로 전이되고, 재화와 서비스 가격이 서로를 밀어 올리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공급망 교란은 항상 지독한 ‘뒤끝’을 남겼으며, 그 상흔은 한참 동안 우리를 괴롭히곤 했다. 해협 통행의 정상화 시점에 따라 향후 시나리오는 극명하게 갈리겠지만, 우리는 다음 세 가지 핵심적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골든타임을 놓치면 중앙은행은 무력해진다. 공급 측면에서 유발된 인플레이션이 경기 위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도, 인하도 선택하기 어려운 외통수에 빠진다. 고유가가 지속될 경우 시장은 한동안 금리 인상의 공포에 시달리다, 인플레이션이 겨우 꺾일 즈음에는 곧바로 경기 침체의 늪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는 통화정책의 효용성이 사라지는 가장 위험한 국면이다.

둘째, 파생되는 금융 위험의 연쇄 반응이다. 중동발 에너지 가격 급등과 금리 상승은 전 세계에 산재한 부실 신용의 민낯을 드러낼 것이다. 재무 구조가 취약한 기업과 가계의 연체율이 급증하고, 레버리지를 극대화했던 사모펀드의 균열은 또 다른 금융 위험으로 번질 수 있다. 또한 식량 가격의 급등은 기초 수입국들의 사회 불안을 야기해 또 다른 분쟁과 난민 문제를 불러오는 도미노 현상을 일으킬 것이다. 증시 역시 이러한 실물 경기 침체를 선(先)반영하며 추가 하락의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셋째, 결국 향후 2주 내외의 수습 여부가 올해 전체 세계 경제와 증시의 운명을 가를 핵심이다. 4월 중순이라는 골든타임 이전에 전쟁이 멈추고 유가가 안정된다면, 세계 경제는 충격을 딛고 이전의 상승 추세로 복귀할 동력을 얻게 된다. 만약 미국과 이란의 합의가 곧 이루어진다면 증시도 더 이상의 걱정이 없다. 협상 과정에서의 정치적 파열음이나 지도자들의 돌출 발언은 시장을 흔드는 일시적인 ‘소음’일 뿐이다.

역사는 실체 없는 소음이 아니라 실질적인 평화의 회복만을 기록한다. 호르무즈 해협에 평온이 찾아왔음을 우리가 피부로 체감할 때면, 주가는 이미 바닥을 지나 상당 폭 올라 있을 것이다. 전쟁은 잔인하고 경제는 냉혹하다. 우리는 지금 가장 나쁜 평화라도 갈구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서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경제의 골든타임을 완전히 삼키기 전에, 이 위험한 에너지 전쟁이 종식되기를 바란다. 위기는 언제나 예고 없이 오지만, 기회는 그 위기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견뎌낸 자의 몫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