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광장_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유럽의 확장 억제’ 나선 佛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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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 군사학과 교수·국제정치학

英佛, 러시아 핵위협에 공동대응
美 ‘유럽때리기’에 안보의식 커져
경제침체 지속에 예산확보 ‘험난’

“미국이 뉴욕을 희생하면서까지 파리를 구하려 할까?” 1959년부터 10년간 프랑스 대통령으로 재직한 샤를 드골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이 자국 도시가 소련의 핵 공격을 받을 위험에 처했는데도 파리를 구하러 오겠느냐고 의구심을 가졌다. 핵무기 보유 국가가 핵무기가 없는 동맹국을 핵으로 보호해 주겠다는 공약이 확장 억제다.

확장 억제는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냉전이 한창인 때에도 프랑스는 미국을 믿지 못했다. 당시 미국은 영국에게만 핵무기 개발 기술을 제공했다. 그렇기에 프랑스는 국력을 총동원해 1960년대 핵무기를 개발했다. 이후 프랑스 핵무기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전력에 포함되지 않았다. 핵무기 보유국 영국의 핵무기는 나토의 통합적인 핵전력에 속해 유럽 방어 계획에 포함된다. 이랬던 프랑스가 최근 독일과 폴란드 등 유럽의 비핵무기 보유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트럼프 집권 2기 미국이 계속해서 유럽을 때리기 때문에 프랑스가 기존 정책을 크게 변경했다. 유럽의 안보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변화이지만 핵무기 증강에 필요한 막대한 재정 등 어려움도 따른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일 북서부 브르타뉴 지역의 일 롱그 해군기지를 방문했다. 프랑스의 전략핵잠수함이 운용되는 곳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독일, 폴란드, 네덜란드, 벨기에, 그리스, 스웨덴, 덴마크와 영국 등 8개국에 확장 억제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영국을 제외한 7개국은 비핵보유국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8개국이 프랑스의 핵 훈련에 참여하거나 프랑스 핵기지 방문, 재래식 무기로 프랑스의 핵 훈련을 지원하는 형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은 다음 날 프랑스와 핵조정 그룹을 설치한다고 밝혔다. 확장 억제 제공 방식과 독일의 기여 등을 협의하고 실행하는 기구다. 영국을 제외한 나머지 6개국도 유사한 기구를 통해 확장 억제를 논의하고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는 지난해 7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런던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핵전략 협력을 발표했다. 두 나라가 러시아의 핵위협에 공동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영국 총리실과 프랑스 대통령실이 핵전략 협력을 다룬다. 프랑스 대통령이 독점하던 핵무기 사용 결정권을 처음으로 완화했다.

그런데 프랑스가 비핵보유국에게 확장 억제를 제공하겠다는 것은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거쳤다. 제공국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폴란드 등 확장 억제 수혜국들은 이게 미국의 확장 억제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임을 강조했다. 미국 역시 유럽의 자주국방 강화를 계속 요구해 왔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프랑스는 2020년 독일 등에 유사한 제안을 했지만 당시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다. 2014년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합병했을 때만 해도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러시아를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런 인식을 바꿔놓았다. 트럼프 집권 2기부터 시작된 유럽 때리기는 인식 변화를 더 재촉했다. 지난해 말에 발표된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은 유럽 방어의 일차적인 책임을 유럽이 맡으라 요구했다. 유럽 각국에서 트럼프의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거의 바닥에 이르렀다.

마크롱 대통령은 확장 억제 제공과 함께 핵탄두 증강도 발표했다. 구체적인 규모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50~100기 정도의 핵탄두 증강으로 본다. 현재 프랑스의 핵탄두는 290기인데 최소 340기로 늘어난다. 올해 프랑스 국방비는 575억유로(약 99조원)로 이 가운데 약 13%가 핵무기 유지에 사용된다. 프랑스 경제는 지난 2년간 1% 안팎에서 정체 중이다. 저성장 중인 상황에서 실업자가 늘어나기에 복지 지출 감소는 쉽지 않다. 핵무기를 증강하려면 국방예산을 크게 증액해야 한다. 유권자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게 쉽지 않다. 또 러시아의 위협이 지속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핵탄두 증강의 중요 변수다.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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