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 정년연장 ‘사회적 재생산’ 멈춰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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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연급수급 개시 전 소득공백 크지만
신규진입 줄면 조직 역량 감소 우려
전문가 활용 등 다양한 경로 찾아야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클로드를 만든 앤트로픽이 AI가 노동시장에 미친 초기 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공개하였다. 이 보고서는 직업별로 AI가 대체할 가능성과 실제 AI 활용도를 분석하고 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따르면, AI의 영향을 크게 받는 직종은 그렇지 않은 직종에 비해 임금이 47% 높고, 대학원 학위 보유자 비율이 4배나 높은 직종, 즉 회계, 금융 분석, 법무, 프로그래밍 같은 지식 노동 분야인 것으로 나타났다. 마침 훌륭한 연구실적에도 불구하고 정년을 맞이한 선배 교수님을 보며 현재 진행 중인 정년연장에 대해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온 화두는 인구감소, 그리고 인구구조의 변화였다. 일을 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경제활동에 기여하기 어려운 고령층은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이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 특히 연금기여자 대비 연금수령자가 대폭 증가할 것으로 보이면서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특히 한국은 의무 정년(60세)과 연금 수급 개시(65세) 사이 5년의 간극을 법으로 만들어 놓고도 그 간극을 메울 사회적 브리징 제도가 사실상 없는 나라다. 같은 구조를 가진 일본조차 정부 지원 재고용 제도로 이 간극을 완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건 다행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AI가 생산성을 향상시킴에 따라 사람의 노동에 대한 필요성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는 관점이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력 초반에 할 수 있는 업무, 예컨대 1~2년 차 변호사, 코딩업무 등이 AI가 대체할 수 있게 되면서 정년연장은 청년실업 문제와 자연스럽게 결부되어 매우 민감한 논의가 되었다. 실제로 앤트로픽 보고서에서는 기존 재직자의 실업률엔 영향이 없었으나 22~25세 청년이, 그중에서도 AI 고노출 직종에서 신규 진입률이 14% 감소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청년들이 느끼는 벽이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실질적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특히 AI 활용이 활발한 분야일수록, 경험과 직관이 풍부한 기존 재직자가 AI를 잘 활용한다면 더 나은 생산성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는 정년 연장 구조는 역설적으로 이런 경력자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게 만든다. 정년이라는 제도 자체가 이들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직무급이나 재고용 방식도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 직무급은 이동성과 직무 객관화 인프라가 없는 한국에서 임금 삭감의 명분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고, 재고용은 이름만 새 계약일 뿐 결과는 다르지 않다.

반면 생산성이 낮아진 고령자를 계속 고용하는 것은 기업에도 부담이다. 문제는 단지 비용만이 아니다. 최근 우리 팀 스포츠가 국제무대에서 부진한 것은 여러 요인이 있지만, 인구 감소로 선수 풀이 얕아진 점도 중요한 요인이다. 팀 스포츠는 선수층의 깊이에 의존하기 때문에 신규 진입자가 줄면 조직 전체의 장기 역량이 감소한다. 노동시장도 다르지 않다. 정년 연장이 신규 진입을 막는 구조로 굳어지면, 단기 생산성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역량 재생산이 멈추는 문제가 된다.

결국 이 논쟁의 본질은 5년치 소득을 누가 책임지느냐는 돈의 문제다. 다만 우리 사회가 던지는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정년을 몇 세로 할 것인가”, “직무급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는 두 번째 질문이다. 60세 이후에도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높일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같은 제도 안에 묶어서 해결하려는 것이 가능한가? 생산성이 높은 사람은 임금피크제와 정년이라는 제도에 갇혀 이동조차 어려워지고, 생산성이 낮은 사람은 기업이 제도를 방패 삼아 비용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AI 시대에 숙련된 경력자의 가치는 충분히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그 울타리가 시장에서 그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막는다. 반대로 생산성이 낮아진 고령자를 억지로 붙잡아두는 것은 기업에도 손해이고 국가 전체로도 비효율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시장에 내버려두는 것은 답이 아니다. 사람은 인격체이고, 그 삶은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다.

독일 시니어 전문가 서비스(Senior Experten Service)나 한국 KOICA(한국국제협력단)처럼 퇴직 전문가의 역량을 사회에서 유통시키는 시도는 힌트가 된다. 그러나 아직 일부 고역량 전문가에 국한된다. 정부의 역할은 정년 숫자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소득 공백을 직접 메울 다양한 경로를 만드는 것이다. 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한 채 숫자만 조정하려는 것은 또다시 문제를 다음 세대에 미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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