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동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 지형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지정학적 위기 때 선호되던 금과 달리, 비트코인이 비교적 빠르게 반등하며 존재감을 키우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이 단순한 위험자산을 넘어 위기 국면에서 대안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17일 가상자산 통계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이란 전쟁 발발 후 최근 14일간 8.5% 올랐다. 반면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국제 금값은 달러 강세와 미국 국채 금리 상승 등 영향으로 장중 한때 온스당 5000달러 선을 밑돌았다.
비트코인이 이번 위기에서 다시 주목받는 배경으로는 자산 이동의 유연성이 꼽힌다. 물리적 이동이 어렵고 금융 시스템 의존도가 높은 금이나 법정화폐와 달리, 비트코인은 네트워크 기반 자산인 만큼 국경을 넘는 이전이 상대적으로 쉽다. 실제 공습 이후 이란 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자금 유출이 급증했다는 분석도 나오면서 전쟁이나 제재 상황에서 비트코인이 대체 이동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도 비트코인 강세 배경으로 거론된다.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가 주목받으며 유가가 오르자 시장은 다시 물가와 금리 경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통상 이런 국면에서는 금이 대표적인 헤지 자산으로 거론되지만, 이번에는 달러 강세와 채권금리 상승이 금값의 추가 상승을 제약했다. 반면 공급량이 2100만개로 제한된 비트코인은 화폐 가치 훼손에 대비하는 희소 자산으로서의 매력이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 구조가 달라졌다는 점도 과거와 다른 지점이다. 현재 비트코인은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기관 자금이 유입되는 경로가 제도권 안에 자리 잡은 상태다. 여기에 주식이나 원자재와 달리 24시간 거래할 수 있다는 특성까지 더해지면서 전쟁처럼 뉴스가 실시간으로 시장을 흔드는 국면에서 대응 수단으로 활용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같은 가상자산 특유의 즉각적인 대응력과 유연한 거래 환경은 비트코인이라는 단일 자산을 넘어 원유 등 실물 자산과 연동된 파생상품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상화폐 업계에서는 이란 전쟁에 힘입어 새로운 유가 추종 가상화폐도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가상화폐 거래소 하이퍼리퀴드에 상장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무기한 선물 가상화폐 누적 거래량은 지난달 28일 3억3900만 달러에서 이달 13일 73억 달러 수준으로 급증했다.
다만 이번 흐름만으로 비트코인이 안전자산 지위를 확실히 굳혔다고 보기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쟁 직후 급락에서도 드러났듯 비트코인은 여전히 가격 변동성이 큰 자산이고, 시장 전반의 위험회피 심리가 더 강해질 경우 다시 위험자산처럼 움직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번 중동 전쟁은 비트코인이 위기 상황에서 기존 안전자산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한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하면 비트코인이 위험자산처럼 먼저 흔들렸지만, 이번에는 낙폭을 빠르게 회복하며 다른 흐름을 보였다”며 “아직 전통적 안전자산으로 단정하긴 어렵지만, 최소한 위기 국면에서 대안 자산으로 검토되는 단계까지는 올라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