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 최윤범 회장 재선임 반대 권고
김성주 이사장 복귀 후 첫 주총 시즌…한진 사례 재조명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금융투자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주총 시즌이라는 점에서 이번 판단이 국내 자본시장 거버넌스(지배구조) 논의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오는 24일 제52기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이사 선임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현재 이사회는 19명으로 구성돼 있지만, 직무가 정지된 4명을 제외하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11명,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4명이다. 이번에 임기가 만료되는 6명을 제외하면 최 회장 측이 6명,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3명이다.
최 회장 측은 이번 주총 안건으로 5명의 이사만 선임하는 안건을 제안했다. 동시에 최윤범 회장과 황덕남 이사회 의장을 후보로 올렸고, 미국 합작법인 크루서블 JV(Crucible JV)는 월터 필드 맥라렌(Walter Field Mclallen) 후보를 별도로 추천했다. 영풍·MBK파트너스 측은 이사 6인 선임 안건을 제안했다.
현재 의결권 기준 영풍·MBK파트너스 측의 고려아연 지분은 약 42%, 최 회장 측은 약 39%다. 양측의 지분 차이가 크지 않은 만큼 금융투자업계는 국민연금의 표심에 주목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고려아연 지분 5%를 보유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주주 중심 경영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국정 핵심 과제로 내건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고려아연 의결권 행사는 정부 정책의 진정성을 가늠할 척도가 될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와 관련해 "국민연금이 보유한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권한을 심하게 행사하면 안 되지만 주권을 가진 주주로서 최소한은 해야 한다"며 "원시적, 후진적 경영을 하는 기업에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그동안 국내 주식 시장이 저평가된 것은 대부분 지배구조와 후진적 시장구조 때문"이라며 "이를 정상화하면 (주식 시장도) 정상화될 것 아닌가. 그게 반영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대통령 발언은 고려아연 정기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판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무리한 투자와 경영권 방어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 문제 등이 주요 쟁점으로 거론된다.
최 회장 체제 아래에서 고려아연의 재무 건전성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고려아연은 2024년 4분기 연결 기준 2457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는 1974년 창사 이래 50년 만에 처음 발생한 분기 단위 순손실이다. 시장에서는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발생한 재무 부담이 실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규모 공개매수를 위해 일으킨 고금리 단기 차입금으로 인해 2024년 3분기 190억원이었던 이자비용은 4분기 741억 원으로 4배가량 급증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이자비용은 1535억원으로 전년 동기 439억원 대비 1000억원 넘게 증가했다.
하바나1호 펀드를 통한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연루 의혹, 이그니오홀딩스 고가 매수 논란 등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거론된다.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 ISS는 △부채를 동원한 고가 자사주 매입 후 저가 유상증자 시도 △해외 자회사(SMC 등)를 활용한 상호주 형성 및 의결권 제한 논란 △이사회의 투명한 심의 없는 대규모 해외 투자 등을 거론하며 "실질적 감독권을 행사할 독립적 이사회가 절실하다"며 최 회장에 대한 재선임에 반대를 권고했다.
ISS가 제시한 반대 사유는 이 대통령이 언급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취지와 일정 부분 맞닿아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연금이 ISS의 권고를 따를 필요는 없지만, 이재명 정부가 지난해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했고, 국민연금의 책무를 명시한 만큼 주주 가치를 훼손한 경영진을 비호하는 것은 국민연금 스스로 법과 정책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주목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7년 말 취임해 2020년 초 사퇴했다가 5년 만에 다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돌아왔다. 김 이사장은 첫 임기 때 2018년 도입한 스튜어드십코드에 따라 '수탁자 책임'을 명분으로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경영 이슈와 지배구조에 적극적인 입장을 취했고, 주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김 이사장 정책의 대표 사례가 대한항공 2019년 주주총회다. 당시 한진그룹 회장이던 고(故)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 선임안에 대해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했고, 그 결과 연임안은 부결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 ISS의 진단, 김 이사장이 도입한 스튜어드십 코드, 그리고 회사의 실질적 손실 데이터가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며 "국민연금의 시장 눈높이 수준의 선택은 불가피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