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좌표 찍고 인간이 쏜다…이란 전쟁이 보여준 ‘알고리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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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석유 저장 탱크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 (UPI/연합뉴스)
2026년 중동 전장에서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미사일이 아니라 코드였다. 인터넷이 끊기고 전력망이 흔들리며 정보망이 교란되는 사이, 전장은 이미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되고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이란 전쟁이 AI가 표적 후보를 제시하고 인간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새로운 전쟁 방식, 이른바 ‘알고리즘 전쟁(algorithmic warfare)’의 현실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한다.

미국은 이번 이란 공격 과정에서 AI 기반 분석 시스템을 적극 활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는 미군이 공격 첫 24시간 동안 약 1000개의 타격 목표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전쟁 역사상 가장 발전된 수준의 AI 기술을 활용했다고 보도했다.

미 국방부가 운용하는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Maven Smart System)’은 데이터 분석 기업 팔란티어(Palantir)가 개발한 플랫폼으로, 위성·드론·센서 등에서 수집된 방대한 정보를 AI와 머신러닝으로 통합 분석해 잠재적 타격 목표와 우선순위를 군 지휘부에 제시하는 역할을 한다. 해당 시스템에는 AI 기업 앤트로픽(Anthropic)의 대형언어모델 ‘클로드(Claude)’가 일부 기능에 활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클로드는 정보 요약과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작전 관련 정보를 정리하고 표적 후보를 제시하는 보조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AI가 전투 결정을 자동으로 내리는 구조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기술 수준에서 AI의 역할은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정리하고 분석 속도를 높이는 데 가깝다고 설명한다. 신미국안보센터(CNAS) 수석 부회장 폴 샤레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AI는 인간의 속도가 아니라 기계의 속도로 타깃 패키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도 “AI는 틀릴 수 있으며 생사가 걸린 상황에서는 인간이 결과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AI 기반 전장 분석 시스템의 정확도 역시 완전하지 않다. 2024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미군 테스트 결과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의 물체 식별 정확도는 약 60% 수준으로 평가됐다. 이는 인간 분석가의 평균 정확도인 약 84%보다 낮은 수치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앤트로픽 제품을 6개월 내 단계적으로 퇴출하도록 지시한 상태였지만, 이란 전쟁 기간에는 대체 기술이 마련될 때까지 해당 시스템 사용이 계속 허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백악관 전쟁 홍보 영상. (출처=X 캡처)
그럼에도 현실 전쟁은 점점 영화나 게임의 한 장면처럼 소비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 군사작전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백악관 공식 SNS 계정에 영화와 게임 장면을 활용한 영상 콘텐츠를 게시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영화 ‘브레이브하트(Braveheart)’, ‘슈퍼맨(Superman)’, ‘탑건(Top Gun)’, ‘아이언맨(Iron Man)’ 등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전투 장면과 실제 이란 공습 영상이 빠르게 교차 편집돼 등장했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1인칭 슈팅 게임 ‘콜 오브 듀티(Call of Duty)’의 게임 플레이 화면과 실제 미사일 타격 영상이 이어 붙여지며 현실 전쟁을 게임 장면과 유사한 방식으로 연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전쟁을 영화나 게임처럼 연출하는 콘텐츠가 실제 전쟁의 폭력성과 인명 피해의 잔혹성을 가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AI가 표적을 분석하고 드론이 원거리에서 타격하는 방식으로 전쟁의 물리적 거리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미디어 연출은 전쟁에 대한 심리적 거리까지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AI가 전장의 좌표를 계산하고 인간이 방아쇠를 당기는 전쟁은 이미 현실이 됐다. 그리고 그 전쟁을 어떻게 보여주느냐 역시 또 다른 전장의 일부가 되고 있다. 알고리즘이 전투를 분석하고 드론이 타격하며, 그 장면이 영화와 게임의 이미지로 편집돼 SNS로 확산되는 시대. 전쟁은 이제 미사일과 코드, 그리고 이미지가 동시에 싸우는 시대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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