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모대출 ‘디폴트 위험군’ 급증…AI 충격에 SW업계 부실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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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신용 운용사 225곳 기업 대출 분석
‘나쁜 PIK’ 대출 비중 6.4%로 4년새 2.5배
SW, 부실 대출 비중 31%로 3배 이상 늘어

▲대출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기업의 자금 조달을 떠받치는 사모대출 시장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대출을 받은 기업들의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상환 조건을 완화해 줄 수밖에 없는 ‘채무불이행(디폴트) 위험군’에 속한 기업이 전체 사모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4년간 2.5배 급증했다. 사모대출발 글로벌 금융위기 경보음이 더욱 커지고 있다.

1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 링컨인터내셔널이 사모신용 운용사 225곳의 기업 대출처 약 7000곳을 조사한 결과, ‘나쁜 PIK’ 상태에 빠진 기업 비중이 전체 대출의 6.4%로, 2021년 말(2.5%) 대비 2.5배 이상 늘었다.

사모대출은 이자를 바로 내지 않고 원금에 더하는 ‘PIK(Payment-in-Kind)’ 옵션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PIK 사용 자체는 대출 계약에서 미리 정해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나쁜(Bad) PIK’는 처음부터 이런 조건이 적용되지 않고 기업의 경영 악화로 상환 도중 긴급하게 PIK로 전환되는 경우를 지칭한다. 이는 아직 디폴트는 아니지만 예비 단계로 간주된다.

무엇보다 급증세가 두드러진 곳은 소프트웨어(SW) 업계로, 나쁜 PIK 기업 비중이 31%에 달해 2021년 말보다 세 배 이상 늘었다. 링컨의 론 칸 매니징 디렉터는 “SW 기업은 기업가치 대비 차입 비중이 낮아 사모대출 업계가 안전한 투자처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출해 왔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SW 업계는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사업 대체 우려로 기업가치가 급격히 하락하고 있어 불안을 더하고 있다.

사모대출의 부실 심사 의혹도 커지고 있다. 사모신용사들이 높은 수익률을 위해 대출처 확대를 우선시하면서 기업의 경영 상태를 충분히 파악하지 않은 채 자금을 공급했다는 것이다.

사모대출은 은행이 아닌 회사가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챙긴다. 공개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및 상장 회사채와 달리 실시간 시장 가격이 없고 외부평가도 받지 않는다. 현재 미국 사모대출 시장 규모는 1조8000억달러(약 2645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산된다.

사모신용 부실 우려에 대한 경고는 지난해부터 급격히 확산됐다. 작년 9~10월 미국 자동차 부품업체 퍼스트브랜즈와 비우량 자동차 담보대출업체 트라이컬러ㆍ프리마렌드가 잇따라 파산 신청을 하면서 과잉 신용 누적 문제가 고개를 들었다. 영국 주택담보대출 회사 마켓파이낸셜솔루션즈(MFS)도 지난달 파산했다. 특히 이들은 동일한 매출채권을 두 번 매각하거나, 같은 담보로 여러 번 대출을 받는 등 부정 거래 의혹을 받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 외에도 추가 부실이 더 존재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바퀴벌레가 한 마리 나타났다면 아마도 더 많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앤드루 베일리 잉글랜드은행(BOE) 총재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모대출 건정성 우려가 커지자 투자를 주저하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투자펀드 블루아울이 운용하던 개인 투자자용 펀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환매(투자금 반환) 요청이 급증해 지난달 분기별 환매 접수 자체를 영구 중단했다.

세계 최대 사모편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이 운용하는 개인투자자 대상 대표 사모대출 펀드(BCRED)에는 올해 1분기 환매 요청이 급증해 처음으로 자금 순유출 상태에 빠졌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투자자들의 환매 요청이 급증하자 사상 처음으로 주력 사모채권 펀드의 인출 한도를 제한했다. 블랙록은 주주들이 260억 달러 규모 HPS기업대출펀드(HLEND)에서 전체 지분의 9.3%를 환매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운용진이 환매를 5%로 제한하기로 결정했다고 6일 발표했다.

시장조사업체 피치북은 “신용도가 낮은 기업 대상의 ‘레버리지론’ 잔액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투자자 자금이 계속 마를 경우 대출 공급 자체에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사모신용 펀드 조달액은 1300억달러로 2018년(1214억달러)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정점이었던 2021년과 비교하면 33%나 감소했다.

사모대출의 주요 대상은 연 매출 1000만~10억달러 규모의 중견·중소기업이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들 기업의 자금 조달은 은행 대출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 대출이 줄어들었고, 현재는 역전되어 사모대출 등 비은행권 대출이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사모대출의 질이 악화될 경우 미국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이 막대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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