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수면 건강에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늦게 잠들고, 오래 뒤척이는 등 좋지 않은 습관이 누적되면서다. 수면은 단지 휴식시간이 아니라 몸을 회복하는 중요한 과정인 만큼, 잠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못 자는’ 국가로 꼽힌다. 에이슬립, 필립스코리아 등 수면 건강에 전문성을 확보한 기업들의 조사 결과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다른 지역보다 짧고, 잠드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자주 각성하는 등 수면의 질도 좋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2024년~2025년 에이슬립이 수집한 37만774명, 556만2192일 분량의 수면 기록을 분석한 결과 한국인의 총 수면시간은 5시간 25분으로, 미국수면재단에 권장하는 성인 적정 수면시간 7~9시간보다 짧아 수면 결핍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은 6시간 39분으로 길어, 1시간 14분을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면량이 부족하면서도 수면 도중 깨어나는 시간이 길어, 수면의 질도 낮았다. 한국인의 수면 중 각성 시간은 권장치 20분의 2배에 달하는 39분으로 나타났다. 수면이 깊게 유지되지 않는 ‘수면 파편화’ 현상은 1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전 연령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50대와 60대가 가장 심했다.
늦은 입면 시간이 수면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로 꼽힌다. 최적의 수면시간은 22시부터 1시 사이이며 입면 시각이 늦어질수록 수면의 효율이 하락한다. 한국인의 평균 입면 시각은 00시 51분으로, 중동, 미국, 아시아, 유럽의 평균보다 약 30분 가까이 늦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 침대에서 잠들기 전 화면을 보며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간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심리로 취침을 미루는 ‘보복성 취침 지연’도 흔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다수 한국인들은 수면의 중요성을 알고 있지만, 실제 습관 변화로 이어지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점이다. 필립스코리아의 수면 및 호흡기 케어 사업부가 전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면(36.4%)은 식단(35.7%)과 운동(27.8%)을 제치고 가장 중요한 건강 관리 요소로 꼽혔다. 응답자들은 수면이 신체적(89.8%), 정신적(88%) 건강에 모두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수면에 만족한다는 응답자는 28.8%에 그쳤다. 불면증(25.9%), 코골이(24.8%), 수면무호흡증(9.1%) 등이 수면에 불편을 주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불편한 증상을 개선하기 위한 시도도 미흡했는데, 코골이 증상을 겪는 응답자 198명 중 53.5%는 별도의 치료를 시도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 응답자는 체중 감량, 금주와 같은 비수술적 치료(27.8%)나 코세척(15.7%)과 같은 소극적 방법을 시도하는 데 그쳤다.
수면 관련 질환의 치료 환경도 열악하다는 지적이다. 불면증, 하지불안증후군, 기면병 등은 환자의 일상을 위협하는 질환이지만, 국내 환자들은 효과적인 치료제를 사용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비용을 부담할 수 없거나, 지나치게 낮은 약가가 책정되는 것을 우려한 제약사들이 한국 시장 진입을 꺼려서다.
불면증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도라(DORA) 계열 약물 ‘렘보렉산트’와 ‘다리도렉산트’는 올해 국내 비급여로 출시를 앞두고 있다. 하지불안증후군 치료제 ‘프레가발린’과 ‘가바펜틴’ 역시 비급여로 사용되고 있다. 기면병 치료제 ‘피톨리산트’는 국내에서 급여로 처방됐지만, 제약사가 한국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해 2024년 9월부로 국내 공급이 중단됐다.
수면 건강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개선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개인적인 건강 문제로 여기는 것을 지양하고, 사회적 인식 제고와 분위기 변화를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지현 대한수면연구학회 부회장은 “다양한 수면 질환에서 치료제 접근성이 제한돼, 정부가 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환자들이 치료를 중단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신원철 대한수면연구학회 회장은 “수면 문제는 단순한 피로감과 개인의 습관 문제로 치부될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풀어야 할 공공의 보건 문제”라며 “수면 질환 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