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저자세’가 한결같다. 북한이 가시 돋친 말을 아무리 쏟아내도 ‘내가 더 잘하겠다’는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취임 직후 “신뢰를 쌓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북한은 “한국과 마주 앉을 일 없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체제를 존중한다”며 달래자 김여정 당시 노동당 부부장은 “이재명은 역사를 바꿀 위인이 아니다”라며 ‘개꿈’ 꾸지 말라고 했다. 얼마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0년 전 일까지 꺼내 ‘사과’하며 “평화롭게 공존하자”고 엎드렸을 때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국을 동족이라는 범주에서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고 했다.
이쯤 되면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올해 이 대통령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계속 강경한 발언을 하는데 우리가 너무 ‘저자세’로 대응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럼 ‘고자세’로 한판 뜰까요”라고 했다. 정부의 대북 기조 실효성에 대한 우려를 특유의 화법으로 뭉갠 것이다.
그러나 안보만큼은 달라야 한다. 정치적 수사와 별개로 국방부는 상대가 도발을 엄두 내지 못하도록 철통 같은 대비 태세를 갖추는 것이 본연의 책무다. 대북 기조가 어떻든 군의 경계와 억지력까지 느슨해져서는 안 된다.
최근 국방부는 대북 ‘핸디캡’을 자처하고 있다.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MDL) 이남을 공동관리하자고 유엔사에 제안했고, DMZ 인근 비행을 ‘우리만’ 금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달 한미 연합연습 ‘자유의 방패(FS)’ 기간 야외기동훈련도 22회로, 작년(51회) 대비 절반 넘게 줄였다.
대북 대비 태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일들임에도 설명은 궁색했다. MDL 이남 일부를 한국군 관할로 조정할 경우 북한이 정전협정 변화를 명분 삼아 DMZ 북측 군사 활동을 늘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묻자 국방부는 “상황을 가정한 질문에 답할 수 없다”고 했다. 가정 없이 계획을 세울 수 있나.
비행금지구역 재설정은 우리 군의 눈을 가리는 것이다. 가뜩이나 북한이 미사일, 장사정포, 드론 운용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초기경보 능력이 약해질 게 뻔한데도 국방부는 보완책을 이제부터 찾아보겠다고 했다. 한미 야외기동훈련 축소를 놓고는 “연중 분산 개최”라고 포장했지만, 주한미군과 불협화음을 노출한 것만으로도 ‘제살 깎아먹는 일’이다. 모든 일을 군 당국이 독단적으로 추진했을 리 없다. 등돌린 북한을 달래려는 정권의 ‘입김’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크다.
‘선의’가 냉정한 판단을 가리면 안보는 위험해진다. 희망적 사고에 기댄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실패한 북한 비핵화 역사가 증명해준다. 김 위원장이 적대적 두 국가를 천명하고 핵 위협 수위를 높이는 것은, 감정이 상해서가 아니라 체제 유지와 협상에 유리하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북한은 핵 무력이 개발에서 실전 운용 단계로 넘어갔고, 중·러와 밀착하고 있으며, 러·우크라 전쟁에서 실전경험을 쌓고 있다. 급변한 정세는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의 전략과 대비 태세를 요구한다. 그런데 정부는 낡은 교본을 꺼내 들고 ‘우리’ 힘만 빼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 구축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설령 외교적으로 낮은 자세를 취하더라도 국방만큼은 덤빌 상대가 아니라는 인식을 분명히 심어줘야 한다. 그 억지력이 도발을 막고 대화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 국방부는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군사적으로 뒷받침해 나가겠다”고 했다. 상식적인 얘기다. 대비태세 강화가 아니라 약화 쪽으로 흘러가는 모양새가 의아할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