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임·보험료 상승에 운송 지연도
美·브라질 등 대체원유 도입 검토
에너지 의존도 높은 산업 파장 확산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 이후 중동 정세가 급격히 악화하면서 한국 정유업계가 원유 공급망 리스크 대응에 들어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일부 정유사 내부에서는 원유 수송 차질이 현실화할 경우 정제설비 가동률을 낮출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최근 중동 정세 악화에 대비해 원유 수급 상황 점검과 대체 수입선 확보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 해상 물류 차질이 발생할 경우 정유·석유화학 공급망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유 수입 구조는 중동 의존도가 높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이 수입한 원유 가운데 약 70%가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 등 중동 지역에서 들어왔다. 이들 원유 대부분은 페르시아만에서 출발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운송된다.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이 글로벌 원유 물류의 핵심 통로라는 점이다. 하루 약 2000만 배럴 규모의 원유가 이 해협을 지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 유조선 운임 상승과 보험료 인상, 운송 지연 등이 동시에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정유업계는 공급 차질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과 브라질, 서아프리카 등 대체 원유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정유 공정은 특정 원유 성상에 맞춰 설계된 경우가 많아 단기간에 원유 종류를 크게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정유사들의 정제설비 가동률 조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부 정유사는 중동산 원유 확보에 차질이 생기면서 4월 도착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가동률 하향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원유 공급이 장기간 차질을 빚으면 정제설비 가동률 조정까지 검토해야 할 수 있다”며 “단순히 유가 상승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국내 정유사에 원유를 공급할 원유 운반선 7척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묶여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산업통상부는 정유업계와 함께 원유 수급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필요할 경우 비축유 방출 등 대응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한국은 정부와 민간을 합쳐 약 200일 수준의 원유 비축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특히 업계에서는 해상 운송 리스크가 커질 경우 원유 조달 비용이 빠르게 상승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유조선 운임지수와 전쟁 위험 보험료가 동시에 오르면 실제 정유사 도입 단가는 국제 유가 상승폭보다 더 크게 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정유사의 정제 마진뿐 아니라 석유화학 원료 가격과 항공유 가격에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정유사들은 내부적으로 비상 대응 체계를 점검하며 원유 재고 관리와 선적 일정 조정에 나선 상태다. 업계에서는 중동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항공과 석유화학, 물류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산업 전반으로 파장이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장기화하면 유가 상승보다 더 큰 변수는 물류 차질”이라며 “호르무즈 해협 상황이 향후 에너지 시장의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