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기업 실적이 저점을 통과하며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업종별 격차는 오히려 확대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반도체는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의 수혜를 받는 반면, 석유화학, 철강, 배터리 등은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이 겹치며 신용 부담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5일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5일 보고서를 통해 한국 기업들의 전반적인 신용도 흐름이 완만한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지난해처럼 부정적 등급 조정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던 흐름은 올해 다소 완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정책 변수는 여전히 부담 요인으로 꼽혔다.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들은 관세 비용과 현지 투자 확대, 전기차(EV) 정책 변화 등에 영향을 받고 있다. 다만 정책 방향성이 이전보다 명확해지면서 기업들의 대응 전략도 구체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업종별로는 반도체가 가장 뚜렷한 수혜 업종으로 제시됐다. 데이터센터 증설과 AI 확산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메모리 시장의 수급 환경도 개선되는 흐름이라는 진단이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자(AA-, 안정적)와 SK하이닉스(BBB, 긍정적)가 대표적인 수혜 기업으로 거론됐다.
반면 석유화학 업종은 구조적인 공급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고 봤다. 중국발 설비 확대와 글로벌 수요 둔화가 맞물리며 제품 가격과 마진이 압박을 받고 있다는 설명이다. S&P 등급을 보유한 국내 화학 기업으로는 LG화학(BBB, 안정적)과 한화토탈에너지스석유화학(BBB-, 부정적)이 포함된다.
GS칼텍스(BBB+, 안정적), 에쓰오일(BBB, 안정적) 등 정유 업종은 단기적으로 정제마진 개선과 재고평가이익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원유 가격 상승 국면에서는 운전자본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화학과 배터리 투자 부담이 동시에 걸린 기업들도 변동성에 놓였다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BBB-, 부정적)과 SK지오센트릭(BBB-, 부정적)은 업황 변화에 따른 재무 부담이 커질 수 있는 기업으로 언급됐다.
철강도 공급과잉과 수요 둔화가 동시에 나타나는 업종으로 지목됐다. 글로벌 철강 시장의 수급 불균형이 지속되는 가운데 관세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해외 투자 확대가 재무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내 철강 기업 중에서는 포스코홀딩스(A-, 부정적), 포스코인터내셔널(BBB+, 부정적), 현대제철(BBB, 안정적) 등이 있다.
전기차 수요 둔화는 배터리 업종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미 대규모 생산능력을 구축한 업체들이 투자 조정과 구조개편을 진행하고 있지만, 단기간에 설비 과잉 문제가 해소되기는 쉽지 않다는 진단이다. LG에너지솔루션(BBB, 안정적)과 SK이노베이션(BBB-, 부정적)은 투자 부담과 함께 재무 유연성 관리가 과제로 거론됐다.
완성차 업종은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있다는 평가다. 관세 부담이 이어지더라도 비용 통제와 현지 생산 확대, 하이브리드 판매 증가 등이 수익성 방어에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A-, 안정적), 기아(A-, 안정적)와 함께 현대모비스(BBB+, 안정적)가 포함된다.
통신 업종에서는 사이버 보안 사고 등 비재무 리스크 역시 기업 경영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내 통신사 가운데 KT(A-, 안정적)와 SK텔레콤(A-, 안정적)이 S&P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다.
기업들의 현금흐름 관리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도체 투자와 해외 생산 확대 등으로 설비투자(CAPEX)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이 확대되면 재무지표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외 변수로는 중동 지역 지정학 리스크도 거론됐다. 한국은 중동산 원유와 가스 의존도가 높아 에너지 가격 상승이나 공급 차질이 장기화될 경우 관련 산업 전반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S&P는 올해도 전반적으로 부정적 등급 조정이 긍정적 조정보다 많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다만 반도체 등 일부 산업에서 실적 개선이 이어지면서 지난해처럼 부정적 편향이 크게 나타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박준홍 S&P 연구원은 “한국 기업 신용도는 완만한 하향 흐름 속에서 업종별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지는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