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 지우고 가리면 안보 끝?⋯구글에 ‘AI 학습’ 지도 통째로 넘기나 [지도 주권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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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부 승인에 '안보 구멍'
데이터 반출땐 AI 학습 가능해져
정부 통제 벗어난 독자체계 구축
판문점ㆍ공군 전력배치도 노출
데이터 복원 고도화 속 '탁상행정'
일본은 10년 구축후 협약 중지돼

▲2월 27일 구글어스에 (사진 왼쪽 위부터)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국가정보원, 서울공항, 청와대 및 대통령실 부근 등이 노출돼 있다. (사진=구글어스 캡쳐)

정부가 구글의 고정밀 지도 데이터 국외 반출을 허가하며 내세운 ‘조건부 승인’이 디지털 시대의 기술적 실체와 데이터 주권을 간과한 무책임한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좌표 표시 제거와 과거 영상 가림 처리를 조건으로 내걸었으나 결국 구글의 작업 스케줄 과정까지 안보 심장부가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데이터가 일단 반출되면 인공지능(AI) 학습을 통해 우리 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구글 독자 체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4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 ‘측량 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가 구글의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허가한다고 발표한 지난달 27일 당일에도 구글어스 등 구글의 주요 지도 서비스에서는 청와대와 서울공항, 국정원, 판문점 등 국내 핵심 보안시설이 무방비로 노출됐다.

판문점은 남북이 대치하는 공동경비구역(JSA) 내 회담장 건물의 푸른 지붕과 배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국가정보원 본청은 광장을 중심으로 한 독특한 건물 구조는 물론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의 대수까지 짐작 가능할 정도다. 가장 안보 위협이 심각한 곳은 성남 서울공항(제15특수임무비행단)이다. 활주로 옆 계류장에 주차된 군용 수송기와 각종 항공기들이 선명하게 포착됐다. 기종의 실루엣이 구분될 정도로 해상도가 높아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공군 전력 배치가 노출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구글이 이를 보완하면 확인 후 반출하겠다고 설명하지만 그사이 안보 공백은 고스란히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본지에 “청와대는 관광지로 노출이 된 바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에서) 선제적으로 요청해서 저해상도로 서비스하고 있는 것”이라며 “서울공항이나 국정원 등은 현재 보안 처리가 안 된 상태임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는 가림 처리를 완료하면 고정밀 지도를 줄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정작 현재 구글 서비스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안보 시설 노출 현상을 수개월 간 공인을 연장해준 것과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데이터 반출이라는 거대 플랫폼의 숙원을 풀어주면서도 정작 당장 우리 안보 시설을 가리라는 강력한 선제적 조치는 끌어내지 못한 채 구글의 작업 스케줄에 안보를 맡겨버렸다는 비판이다.

정부는 좌표 표시 제거를 안보 취약점의 ‘해결책’으로 내세웠으나 이 역시 데이터 결합 기술이 고도화된 디지털 시대의 실체를 간과한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대한공간정보학회장인 안종욱 안양대학교 스마트시티공학과 교수는 “구글이 가진 기존 위성 영상과 좌표 없는 고정밀 지도를 중첩하면 정밀 좌표를 추출해내는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좌표라는 텍스트 정보를 삭제하더라도 이미 공개된 시각 정보와 지형 정보를 결합하면 사실상의 위치 데이터 복원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정부의 이러한 낙관론에 대해 ‘데이터 주권’ 관점에서 강력한 우려가 잇따른다. 안종욱 교수는 “데이터는 일단 나가면 불가역적”이라며 “정부가 사후에 제재를 가한다 해도 이미 구글이 데이터를 학습시켜 AI로 자체 지도를 구축했다면 이를 회수하거나 막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안 회장은 특히 일본의 사례를 들어 “과거 일본 지도사가 구글에 데이터를 제공하다가 구글이 10여 년간 자체 생산 체계를 갖춘 뒤 협약이 중지된 전례가 있다”며 “우리나라도 구글이 데이터를 학습해 실시간 갱신 체계를 갖추게 되면, 정부가 내건 조건들을 위반하더라도 ‘우리가 독자 구축한 데이터’라고 주장할 경우 제재 명분이 사라진다”고 내다봤다. 그는 “AI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일본은 10년 걸린 과정이 우리나라는 1년도 안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정부는 ‘저해상도라 안전하다’거나 ‘나중에 가릴 것’이라는 행정적 답변에만 치중할 뿐 데이터 결합이 가져올 실질적 위해성에는 눈을 감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네이버지도와 카카오맵 등 국내 기업은 국가 안보 가이드라인에 따라 보안시설들을 산이나 논밭으로 위장 처리(마스킹)해 일반인의 접근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반면 해외 업체인 구글은 위성사진이며 저해상도라는 이유로 노출 상태를 유지하다가 결국 고정밀 데이터까지 확보하게 된다는 ‘역차별’ 상황도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수치 위주의 보안 검증에서 벗어나 데이터 결합이 가져올 실질적 위해성과 공간정보 주권 수호 관점에서 반출 승인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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