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필리버스터에 멈춰선 경제…정치는 ‘번쩍’, 민생은 ‘슬로모션’ [정치 9단, 경제 1단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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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필리버스터 충돌…정치 쟁점에 묶인 국회
반도체법도 ‘절충 입법’…핵심 쟁점은 미해결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과 관련해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이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을 시작하자 의원들이 퇴장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3월 임시국회가 문을 열지만 민생 시계가 여전히 멈춰 있다. 여야가 특검법과 필리버스터를 주고받는 극한 대치 속에서 반도체특별법, 세제 개편안 등 경제 사활이 걸린 법안들은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정치가 정책을 설계하는 게 아니라 경제 불확실성만 키우는 리스크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국회는 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충돌로 다시 강경 대치 국면에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이 ‘2차 종합특검법’을 추진하자 제1야당 국민의힘은 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로 맞서며 정국이 급속히 경색됐다.

특검 논쟁은 단순 법안 충돌을 넘어 ‘탄핵 정국’과 ‘사법개혁’ 프레임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민주당은 미진한 수사를 보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정치적 목적의 특검 남발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치 공방은 국회 의사일정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당초 국회는 설 연휴 전 본회의에서 민생 법안 150건 안팎을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헌법재판소법 개정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 갈등이 폭발하며 ‘민생 본회의’ 일정 자체가 흔들렸다.

이달 임시국회도 민생ㆍ경제 법안이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5일 열리는 3월 임시국회는 19일과 31일까지 총 세 차례 본회의를 통해 주요 법안을 의결한다. 여당은 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 특별법(대미투자특별법), 대구·경북 행정통합법 등을 처리할 계획이다.

민생·경제 법안은 국회에 대거 쌓여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5년 12월 기준 미처리 법률안은 1만2000건이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법안 처리율은 약 20% 수준으로 같은 기간 21대 국회보다 낮다.

특히 행정안전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 등 여야 대치가 심한 상임위에서 법안 적체가 두드러진다. 노동 유연성 조항을 담은 반도체특별법 개정안, 기업 상속세 규제 완화 등 경제·민생 법안 상당수가 상임위원회 단계에 머물러 있다.

현장 체감도 역시 낮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기업 투자나 고용은 정책 방향이 확정돼야 움직이는데 국회 입법이 늦어질수록 불확실성이 커진다”며 “정치 일정이 경제 정책 속도를 좌우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 정책 분야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은 산업 경쟁력 강화와 보조금 지원을 골자로 마련됐지만 핵심 쟁점이었던 연구개발(R&D) 인력에 대한 주52시간제 예외 적용 조항은 결국 빠졌다. 야당은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근로시간 특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여당과 노동계 반발을 고려해 해당 조항을 제외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반도체 산업 지원 법은 마련됐지만 기업들이 요구한 근로시간 규제 완화는 향후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하면서 논쟁의 불씨는 남았다. 재계에서는 “핵심 규제는 남겨둔 채 지원만 늘린 절충형 입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외 통상 환경과 직결된 입법 역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최근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대미특위)를 구성하고 활동 기한을 9일까지로 정했지만 정치 갈등이 이어지면서 실질 논의는 더딘 상황이다.

경제6단체는 최근 공동 호소문을 내고 “입법 지연은 대미 협상력 약화와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를 요청했다.

세제 개편 문제 역시 경제계가 주목하는 분야다. 상속·증여세 체계는 명목 최고세율 50%에 상장사 최대주주 지분 할증 20%가 더해져 실효세율이 최대 60% 수준까지 올라간다.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과도한 상속·증여세 부담 때문에 대주주가 장기 투자나 지분 유지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며 “지배구조 개선과 배당 정책이 보수적으로 운영되면서 한국 증시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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