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쓰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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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 소설가

최근 신간 소설 한 권을 내고 고향 강릉 어느 서점에서 북토크를 했다. 소설 내용이 고향 이야기다 보니 평소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모였다. 나는 강릉에서도 대관령 아래쪽 산골마을에서 태어났다. 450년 전에 시작된 조선시대의 향약(마을 규약)이 아직까지도 옛모습 그대로 전해져오는 전국 유일의 마을이다. 전통을 지켜 내려온다는 긍지가 대단하다. 한편으로는 외부 문명에 대한 저항도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기차를 타고 고향마을을 지나며 그런 곳에서 태어난 나의 삶과 나의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세상 살아가는 일을 말하기 쉽게 ‘먹고사는 일’이라고 한다. 그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나는 ‘글을 써서 먹고사는 사람’인 셈이다.

내가 태어난 마을에서 150년 전에 태어나신 할아버지도 태어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나무를 때어 지은 밥을 드셨다. 먹고사는 일만 따진다면 이 방식은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고 내려왔다. 어린 시절 나도 옛날 할아버지들처럼 나무를 땐 솥의 밥을 먹었다. 그러다가 스무 살 무렵 도회지로 공부를 하러 나와 연탄을 땐 솥의 밥을 먹었으며, 때로는 석유로 불을 피우는 곤로에 지은 밥을 먹기도 했다.

지금은 거의 가스거나 전기로 밥을 지어 먹는다. ‘햇반’이라는 이름으로 공장에서 지어서 잘 포장해서 파는 밥을 전자레인지에 덥혀서 먹기도 한다. 옛날 조상님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내가 얼굴을 아는 할아버지만 해도 80 평생 오직 나무로만 지은 밥을 드셨는데, 내 한 사람의 생애에만 나무, 연탄, 석유, 가스, 전기, 전자레인지까지 다섯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여기에 태양열을 바로 이용하는 방식도 나올지 모르겠다.

그러면 먹고사는 일을 지탱하게 하는 직업으로서 나의 글쓰기를 한번 생각해보자. 할아버지들은 태어나서 돌아가실 때까지 오직 붓으로만 글을 썼다. 학교에 다니는 우리는 연필과 볼펜이 편해 그걸 드리면 할아버지는 그걸로 글을 쓰는 걸 불편하게 여겼다. 종이에 붓으로 글을 쓰는 방식은 종이가 발명된 이래 큰 변화 없이 할아버지 세대까지 내려왔다.

할아버지는 불편해하셨지만, 사실 종이 위에 글을 쓴다는 점에서 붓이나 연필이나 만년필이나 볼펜이나 큰 차이가 없다. 불과 40년 전 나도 종이로 된 원고지 위에 한 자 한 자 펜으로 글씨를 썼다. 필기구만 좀 다르다뿐이지 옛날 할아버지들이 글을 쓰는 방식 그대로 글을 썼던 것이다. 그러다 잠시 타자기를 사용하다가 어느 시기에서부터 모든 원고를 컴퓨터로 쓰고 있다. 지금 이 원고 역시 컴퓨터로 작업하고 있다.

책을 읽는 것 역시 그렇다. 예전에는 종이 위에 붓으로 쓴 글을 읽었다. 좋은 글은 그냥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책을 빌려와 그 책과 똑같이 따라서 썼다. 바로 필사본이라는 이름의 책이다. 손으로 쓰는 수고보다는 좀 더 대량으로 인쇄하는 방식으로 목판 활자를 만들고 금속활자를 만들었다. 그런데 내 당대에 와서는 종이로 만든 책만이 아니라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바로 읽는 전자책이 나왔다.

밥을 먹고사는 일과 그것을 지탱하게 하는 직업으로서의 일. 작가로서 먹고 사는 일의 가장 기본이 되는 두 가지 항목 모두 그때그때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여 그것을 그다지 큰 변화로 여기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 먹고사는 일에 대한 우리 생애 동안의 변화가 수천 년간 인류가 이루어온 변화보다 더 크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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