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0년’ 끝낸다…650억 달러 승부수 띄운 일본 [일본 반도체 재건 본격화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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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공장 유치·국내기업 육성·장비 경쟁력 제고 ‘3대 전략’
TSMC·라피더스 앞세워 ‘칩 부활’ 모색
2027년 2나노 양산, 최대 분수령

1988년 일본 기업들은 전 세계 반도체 매출의 51%를 차지하며 메모리와 제조 장비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그러나 2019년으로 넘어가면서 점유율은 꾸준히 하락해 10%로 쪼그라들었다. 한때 ‘칩 제국’이던 일본은 핵심 기술을 해외 공급업체에 의존하게 됐다. 하지만 지난해 일본이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 전례 없는 정부 보조금과 글로벌 기술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를 무기로 반도체 산업 재건에 나섰다. 업계에서는 이를 “일본 반도체의 대반전 시도”로 평가한다.

26일 대만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일본은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국가 총력전’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2021~2024년 반도체·인공지능(AI) 지원 전략에 착수하면서 약 4조엔(약 36조원)을 투입했다. 이 집행분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을 환산하면 0.7% 수준으로 미국 ‘반도체 지원법(칩스법·Chips Act)’의 약 0.2%를 세 배 이상 웃도는 것이다.

정부는 뒤이어 작년부터 2030년까지 가동하는 10조엔(약 650억달러) 규모의 추가 보조금 패키지를 작년 11월 발표했다. 해외 공장 유치, 국내 선도 기업 육성, 장비 산업 경쟁력 제고라는 3대 전략이 정책의 뼈대를 이룬다.

실제로 2024년 가동을 시작한 TSMC 구마모토 공장은 일본 정부로부터 80억달러의 보조금을 지원받았다. 해당 공장은 자동차·가전제품용 12~28나노미터(nm·1nm=10억 분의 1m) 칩을 생산하고 있으며, 2027년까지 6~7나노급 첨단 공정을 목표로 하는 2공장 건설도 추진 중이다. 현재 TSMC의 구마모토 공장 확장은 이미 44개 협력사를 유치하며 선순환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토종 챔피언 육성의 상징은 라피더스다. 도요타·소니·소프트뱅크 등이 출자한 이 회사는 IBM과 협력해 홋카이도에서 내년까지 2나노급 최첨단 칩을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본 정부는 이 프로젝트에만 120억달러를 배정했다. 라피더스의 2나노 공정이 계획대로 안착할 경우 AI 컴퓨팅과 자율주행차 전문 반도체 분야를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장비 분야에서도 지원이 이어진다. 세계 3위 반도체 장비업체인 도쿄일렉트론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을 통해 핵심 제조 장비 기술 우위를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일본은 △인력 양성 △규슈·홋카이도 등 반도체 거점 지역의 인프라 확충 △한국·미국·대만과의 ‘칩 4 동맹’ 참여 등을 병행하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 부흥은 단순히 국가적 자부심 차원이 아니다. 글로벌 공급망의 치명적 취약점을 해결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첨단 칩의 75%가 중국 본토에서 불과 160km 떨어진 대만에서 생산되는 상황에서 지정학적 긴장은 전체 기술 생태계를 위협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반도체 부활은 지리적 다각화를 제공할 수 있다고 디지타임스는 강조했다. IBM, 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들이 대만 해협 분쟁 지역 외부에 대체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데 일본을 주목하는 이유다.

최대 분수령은 2027년이다. 라피더스가 목표로 한 2나노급 초미세 공정 칩 양산이 현실화하면 일본은 최첨단 반도체 경쟁에서 존재감을 입증할 수 있다. 반대로 실패할 경우 650억달러라는 막대한 재정 투입조차 수십 년간의 쇠퇴를 만회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고개를 들 수 있다고 디지타임스는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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