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직연금 시장 무게 중심이 기업이 운용하는 확정급여(DB)형에서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 및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배경에는 뚜렷한 수익률 격차가 자리 잡고 있다. 특히 2025년 들어 실적배당형(원리금 비보장) 상품 수익률이 폭발적으로 상승하면서 이러한 흐름은 더욱 빨라지는 모습이다.
26일 본지가 금융감독원 퇴직연금 비교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4년 4분기 대비 2025년 4분기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다만 퇴직연금 상품 유형 별 성장 속도에서는 뚜렷한 차이가 나타났다.
DB형 적립금은 214조6062억 원에서 228조9451억 원으로 6.7% 증가하는 데 그쳤지만, DC형과 IRP는 각각 20.3%(136조9875억 원), 32.6%(130조8695억 원) 늘며 상대적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전체 적립금이 늘어나는 국면에서도 가입자 자금 증가 속도는 DB보다 DC·IRP에 훨씬 빨랐다.
실적배당형(원리금 비보장) 상품의 높은 수익률이 자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 운용 관행이 강한 DB형과 달리, DC·IRP에서는 가입자가 보다 적극적인 자산 배분을 선택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실적배당형 상품이 증시 상승기와 맞물려 성과를 낸 영향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실제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주요 증권사의 지난해 DC형 수익률은 평균 20%를 넘어선다. 1년 새 15%가량 급등한 수치다. IRP 원리금 비보장 수익률 역시 15%를 웃돌았다. 반면 같은 기간 DB형 수익률은 3%대에 머물렀다. 동일 금융사 내에서도 상품 유형에 따라 수익률이 최소 5배 이상 벌어진 셈이다. 즉, 근로자가 퇴직연금 자산을 어떤 상품으로 운용하느냐에 따라 은퇴 자산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수익률 판도 변화에는 2023년 도입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정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금융권 내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DC형 원리금 비보장 적립금은 2024년 4분기 7조3047억원에서 2025년 4분기 11조3728억원으로 1년 만에 55% 이상 급증했다. 디폴트옵션을 통해 타깃데이트펀드(TDF)나 주식형펀드 등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증시 상승기에 따른 평가이익까지 더해지면서 적립금 규모가 빠르게 확대된 결과로 해석된다.
여기에 2024년 말 시행된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는 가입자 이동권을 넓히며 시장 경쟁에 추가 동력을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기존 상품을 해지하지 않고도 금융사를 옮길 수 있게 되면서 수익률이 낮은 사업자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사업자로의 자금 이동이 이전보다 쉬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5년 4분기 기준 KB증권(23.32%), 삼성증권(21.02%) 등은 20% 이상의 DC형 원리금 비보장 수익률을 기록하며 은행권 주요 사업자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성과를 보였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디폴트옵션과 실물이전 제도가 인프라 역할을 하고, 기록적인 수익률 수치가 공시되면서 가입자들의 자산 배분 전략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이제 퇴직연금은 단순 적립이 아닌 ‘운용’의 영역으로 진입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