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진 변리사

다만 출원 건수 자체가 곧바로 경쟁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출원 증가가 의미 있는 성과로 남으려면, 그 특허들이 실제 시장에서 타사의 모방을 막고, 협상에서 레버리지가 되고, 분쟁에서 버틸 수 있어야 한다. 쉽게 말해 ‘많이 내는 것’에서 ‘이길 수 있게 내는 것’으로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
특허 퀄리티를 좌우하는 핵심은 결국 청구항 설계다. 제품과 서비스의 핵심 기능을 어떻게 표현할지, 경쟁사가 어떤 방식으로 회피 설계를 시도할지, 그 회피를 종속항과 다른 독립항으로 어떻게 포섭할지를 출원 단계에서 설계해야 한다. 출원 명세서의 분량이 설명서로는 훌륭하더라도, 청구항이 좁거나 표현상 입증이 어려우면 등록 이후 방어가 어렵고, 반대로 넓게만 쓰면 무효 공격에 취약해지기 쉽다.
또한 분할 출원을 포함한 후속 전략이 중요하다. 최초 출원은 기술을 충분히 담아 우선권을 확보하되, 시장 반응과 경쟁사 움직임에 맞춰 권리범위를 분할로 재구성하고, 후속 출원으로 개선 포인트를 촘촘히 채워야 강한 포트폴리오가 구축된다. 여기에 FTO(Freedom To Operate) 분석, 즉 타인 특허에 대한 침해 위험 점검을 병행하지 않으면, 우리 특허가 있어도 제품 출시 단계에서 발목을 잡힐 수 있다.
결국 특허출원 26만 건이라는 성과를 국가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하려면, 출원 장려 다음 단계의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과 연구현장에서는 기술기획, 개발, 출시 일정과 특허 전략을 한 묶음으로 운영해야 하고, 개인과 스타트업은 초기부터 변리사와 논의하여 공개 범위, 심사청구 시점, 권리화 우선순위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특허는 숫자가 아니라 설계의 결과물이다. 세계 4위의 자부심이 시장 일류의 성과로 이어지려면, 이제는 출원의 양을 특허의 질로 바꾸는 전략적 고도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형진 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