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용 줄이고 고부가 중심 체질 전환 속도
정책 불확실성 해소되며 사업재편 논의 확산 촉각

중국발(發) ‘저가 공습’에 맞서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산업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대산산단 내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합병을 통해 나프타분해시설(NCC) 설비를 감축하고, 동시에 고부가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을 본격화한다. 이번 ‘대산 1호 프로젝트’가 장기 침체에 빠진 석유화학 산업의 체질 전환을 이끌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25일 정부가 승인한 대산 1호 프로젝트는 사업재편 기간인 3년 동안 110만t(톤) 규모의 롯데케미칼 NCC 설비를 가동 중단하고 양사의 범용 다운스트림 생산을 축소하는 내용이 골자다. 이를 통해 대산산단 내 에틸렌 공급 과잉을 완화하고 잔여 설비 가동률을 기존 80% 수준에서 100%까지 끌어올려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에틸렌·프로필렌 등 범용 제품은 한때 국내 기업들의 대표적인 현금 창출원이었지만, ‘화학 굴기’를 내세운 중국이 공격적인 NCC 증설에 나서면서 글로벌 시장은 만성적 초과 공급 상태에 놓였다. 중국산 저가 물량에 밀려 가격 경쟁력이 약화했고, 이는 석유화학 업계의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국내 NCC 평균 가동률은 70%를 밑돌며 공장을 돌릴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범용 중심 사업 구조가 수익성의 한계에 부딪히면서 고부가 전환은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전기차·배터리·친환경 소재 등의 산업에 쓰이는 고부가 소재는 기술 장벽이 높아 중국의 저가 공세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범용 대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마진을 유지할 수 있다.
대산 1호 프로젝트로 출범하는 신설법인 역시 고부가 전환에 무게를 둔다. 전선·케이블용 고탄성 플라스틱과 이차전지 전해액용 유기용매 생산을 추진하는 한편 바이오 납사 등 친환경 원료 활용 비중을 늘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유와 석유화학 간 수직계열화를 통해 원료 수급 안정성과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정부는 금융지원과 세제·인허가·지역경제·연구개발(R&D) 지원을 묶은 2조1000억원 규모의 종합 지원 패키지를 마련했다. 앞서 정부는 ‘선 자구책, 후 정부 지원’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이번에도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각각 6000억원씩 총 1조2000억원을 출자하는 자구안을 내놨다. 민간이 손실을 감수하며 설비를 줄이고 사업 구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만큼 정부도 금융·세제 특례로 사업재편을 뒷받침하겠다는 메시지다.
대산 1호 프로젝트 승인과 지원 패키지 발표로 사업재편과 관련한 정책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지원 범위와 조건이 구체화된 만큼 여수·울산 등 다른 산단에서도 설비 통합이나 합병, 자산 매각 등 후속 논의에 속도가 붙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엄찬왕 한국화학산업협회 부회장은 “현재의 구조적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민간의 자구 노력은 물론 정부의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이번 승인이 향후 구조재편 확산의 중요한 마중물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정책적 지원에 힘써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