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고도 싫은 한국"…동남아 불매운동 이면 [해시태그]

기사 듣기
00:00 / 00:00

블랙핑크 리사·하투하 카르멘으로 향한 동남아 국가적 자부심


▲"부럽고도 싫은 한국"…동남아 불매운동 이면, 블랙핑크 리사·하투하 카르멘으로 향한 동남아 국가적 자부심 (디자인=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같은 동네 동갑 친구인 줄 알았던 이의 승승장구. 놀라우면서도 가슴 한편 왠지 모를 부러움과 질투심이 공존하는데요. 잘난 이와 ‘절친’으로 지내고 싶지만, 한편으론 나의 ‘잘남’을 몰라주는 세상이 야속하죠. 그래도 지고 싶진 않은데요. 이 친구의 ‘단점’을 떠벌리고 이 생각을 공유하는 그룹을 만들어갑니다. 아, 물론 이렇게 된 이유는 그 친구의 ‘잘못’ 때문이지 나의 자격지심은 결코 아님을 강조하면서요.

설 연휴 기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밴드 데이식스(DAY6) 콘서트 잡음은 처음엔 그저 하나의 팬덤 소동처럼 보였는데요. 반입이 금지된 망원렌즈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던 한국인 팬, 이른바 ‘홈마’가 제지당했고 그 장면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왔죠. 여기까지는 콘서트장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규정 위반 논란이었습니다.


▲"부럽고도 싫은 한국"…동남아 불매운동 이면, 블랙핑크 리사·하투하 카르멘으로 향한 동남아 국가적 자부심 (출처=X 캡처)

▲"부럽고도 싫은 한국"…동남아 불매운동 이면, 블랙핑크 리사·하투하 카르멘으로 향한 동남아 국가적 자부심 (출처=X 캡처)


하지만 이후 한 현지 이용자가 해당 한국 팬의 얼굴을 촬영해 온라인에 공개하면서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죠. 외모를 조롱하는 게시물이 확산됐고 한국 온라인 커뮤니티 일부에서는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를 향해 인종적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동남아 이용자들도 한국의 성형 문화, 높은 자살률, ‘닭장 아파트’ 등 자극적 표현을 거론하며 맞섰는데요. 카메라 하나로 시작된 설전은 순식간에 ‘한국 대 동남아’ 구도로 번졌죠.

SNS에는 ‘SEAbling’이라는 해시태그가 빠르게 퍼졌는데요.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와 형제·자매(sibling)를 합친 말로, 동남아 국가들이 하나로 뭉친다는 의미입니다. 엑스(X), 틱톡, 스레드 등에서는 ‘Korea vs Asian’, ‘SEAblings’ 같은 검색어가 급부상했고요. 일부 게시물에는 한국 드라마 보이콧, 한국 기업 제품 불매를 촉구하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과거 홍콩·대만·태국 네티즌이 연대한 ‘Milk Tea Alliance(밀크티 동맹 ·반(反) 중국 운동)’를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도 나왔는데요.


▲"부럽고도 싫은 한국"…동남아 불매운동 이면, 블랙핑크 리사·하투하 카르멘으로 향한 동남아 국가적 자부심 (출처=X 캡처)


다만 이 불매 움직임이 실제 소비 행동으로 이어졌는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온라인에서 퍼진 해시태그가 곧 사회 전체 분위기를 대변한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도 많죠. 한국인들의 비하 발언도 실제 ‘한국인’이 맞냐는 여론부터,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세력이 있다는 뒷말까지 무성합니다. 자극적인 게시물일수록 빠르게 확산되고 캡처 이미지와 번역 계정이 갈등을 재생산되는 SNS 구조도 한몫했죠. 극단적 표현이 상단에 노출되면서 마치 다수가 같은 생각을 하는 듯한 착시가 만들어졌고요. 상대의 과오만을 부각하고 일반화하는 방식은 또 다른 반발을 낳으며 악순환이 반복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거대한 K컬처를 둘러싼 묘한 감정이 이번 사태가 유독 크게 번진 이유로도 꼽히는데요. K팝, K드라마 등 K컬처는 ‘글로벌 산업’이지만 생산과 결정권의 중심은 이름 그대로 한국입니다. 동남아는 핵심 소비 시장이자 거대한 팬덤 기반이지만 주도권을 가질 순 없는데요. 소비자는 많지만, 결정권은 없고 애정은 크지만, 중심은 아닌 구조. 질투와 선망이 뒤섞일 수밖에 없죠.


▲그룹 블랙핑크 리사 (뉴시스)


자국 출신 멤버가 한국 대형 기획사에 데뷔하면 현지에서 국가적 자부심이 터져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대표적인 인물이 그룹 ‘블랙핑크’의 리사입니다. 태국 출신인 리사가 글로벌 스타로 성장하자 태국인들의 긍지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는데요. 이 감정이 과잉보호, 예민함으로 이어졌죠. 리사의 파트 분량을 초 단위로 분석하고 센터 위치를 집계하고, 의상과 브랜드 활동을 비교하며 ‘차별’이란 단어를 내세우는데요. 대부분의 논리는 4명의 멤버 중 제일 뛰어난 리사가 태국인이란 이유로 차별받는다며 분통해 하죠. 리사의 앨범 발표 등 새 소식이 나왔을 때 멤버들의 SNS 홍보가 없으면 득달같이 달려와 악플을 다는 사태가 빈번합니다.


▲그룹 하츠투하츠 카르멘 (뉴시스)


SM엔터테인먼트 신인 걸그룹 ‘하츠투하츠(하투하)’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는데요. 바로 인도네시아 출신 카르멘을 둘러싼 이야기죠. 한국의 유명 소속사에서 데뷔한 최초의 인도네시아인이다 보니 자국에서의 관심은 너무나 뜨거웠는데요. K팝 전면에 나선 인도네시아인의 등장이라며 격한 자부심을 드높이다가도 타멤버를 견제했죠. 그들 눈에는 가장 아름답고 실력도 뛰어난 카르멘이 조금이라도 가려져 있거나 메인에 나서지 못하면 그건 명백한 ‘차별’이었는데요. 심지어는 한국 남자 아이돌이 모두 카르멘에게 반했다는 식의 쇼츠, 틱톡 영상도 즐비합니다. 그런 탓에 한국 팬들과 타국 K팝 팬들과의 갈등이 그간 이어져 왔는데요.


▲"부럽고도 싫은 한국"…동남아 불매운동 이면, 블랙핑크 리사·하투하 카르멘으로 향한 동남아 국가적 자부심 (출처=X 캡처)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등장합니다. 미국 인터넷 문화권에서 퍼진 ‘팬시 아시안(Fancy Asian)’과 ‘정글 아시안(Jungle Asian)’이라는 이분법적 밈이죠. 세련되고 부유한 동북아시아와 비교적 낙후된 동남아를 대비시키는 프레임인데요. 이 구분은 서구적 시선에서 비롯됐지만, 온라인에서는 아시아 내부의 감정에도 영향을 미쳤죠. 한국·일본이 ‘멋진 아시아’로 소비되는 동안 동남아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다는 인식이 형성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네티즌 일부의 비하 발언이 등장하면 단순한 댓글이 아니라 ‘서열 확인’처럼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커지는 건데요. 반대로 한국 쪽에서도 해외 팬덤의 과잉 반응을 ‘선 넘는 개입’으로 해석하며 방어적으로 변하게 되죠.

이처럼 동남아에서 K팝은 강력한 문화적 동경의 대상입니다. 한국 드라마와 음악은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한국 기업 제품도 널리 사용되죠. 그만큼 한국은 ‘가까운 선망’의 위치에 있는데요.

하지만 그 선망이 늘 편안한 것은 아닙니다. 존중받고 싶지만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 감정은 급격히 반전되는데요. 그야말로 ‘부럽고도 싫은’ 양가 감정 공존 상태죠.


▲영화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시네마' 스틸컷 (씨제이포디플렉스 주식회사, CJ CGV)


이 거대한 산업이 커진 만큼, 팬들도 이제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데요.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 안에 ‘우리나라’라는 의미를 함께 담고 있죠. K팝은 세계로 뻗어 나갔지만, 사람들의 감정까지 국경을 넘은 것은 아닙니다.

온라인에서 번진 해시태그와 불매 구호가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알 수 없는데요. 다만 분명한 건, K팝이 글로벌 산업이 될수록 그 안에는 국가에 대한 자부심과 경쟁심도 함께 따라붙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갈등은 그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장면인 셈이죠.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많이 본 뉴스
댓글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