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기도 하남에 거주하는 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전셋집을 옮기기 위해 시세를 확인하다가 망연자실했다. 2년 전 5억2000만~5억5000만원에 거래되던 같은 단지 전세 매물이 7억5000만원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년 만에 2억원 가까이 올라 감당하기 어렵다”면서 “대출도 한도까지 써 월세 전환을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2년 전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보증금 인상률을 5% 이내로 묶었지만, 갱신 기간이 끝난 뒤에는 급등한 시세를 그대로 떠안아야 하는 처지다.
‘세입자 보호’를 내세워 도입된 임대차 3법이 시행 5년을 넘겼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는 주거 안정을 목표로 했지만 현장에서는 전셋값 급등과 월세 전환 가속이라는 부작용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최근 가계대출 규제 강화까지 겹치면서 서민과 청년층의 주거 부담을 더욱 키웠다는 평가도 나온다.
23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실거래가격 연간 변동률은 임대차 3법 시행 첫해인 2020년 14.4% 급등했다. 2021년 3.3%로 둔화됐고 2022년 -5.6%로 하락했지만 △2023년 5.3% △2024년 2.7% △2025년 5.6% 등 단기 조정 이후 재상승 흐름이 이어지는 양상이다.
2020년 7월 도입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전월세 신고제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제를 골자로 한다. 전월세 신고제는 계약 체결 후 30일 이내 신고를 의무화해 시장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다. 전월세상한제는 갱신 계약 시 임대료 인상폭을 5% 이내로 제한하고 계약갱신청구권제는 세입자가 2년 계약 종료 후 추가로 2년 더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2+2년’ 구조가 핵심이다.
문제는 갱신 계약으로 억눌렸던 인상분이 종료 시점에 한꺼번에 반영되거나 갱신 계약과 신규 계약 간 가격 차가 크게 벌어지는 ‘이중 가격’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이라도 기존 세입자와 신규 세입자의 보증금 격차가 수억 원에 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전세의 월세화도 가속화하고 있다. 보증금을 낮추는 대신 월세를 높이는 반전세·월세 계약이 늘면서 세입자의 매달 현금 부담이 커졌다. 특히 목돈 마련이 어려운 사회초년생과 청년층의 주거비 비중이 확대되며 소비 여력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출 규제 강화, 토지거래허가구역 지정, 신규 공급 감소까지 맞물리며 전세 매물은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노시태 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이달 서울 전세 매물은 지난달보다 15.7% 감소했고 전년 동기 대비로는 30% 이상 줄었다”며 “내년까지 서울 신규 입주 물량이 감소하는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수를 고려하던 수요자들까지 계약갱신청구권을 활용해 최대 4년간 거주를 이어가면서 시장에 나오는 신규 전세 물량이 더 줄어드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