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투자 지연·비관세 장벽 협상 난항 시 관세 직격탄⋯"무역수지 관리 시급"

한국과 미국의 통상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한 가운데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흑자가 여전히 큰 폭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헌 판결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법 122조와 301조 등 한층 더 까다로운 대체 관세 카드를 즉각 꺼내 들면서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미 흑자가 '새로운 관세 폭격'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수지(수출액-수입액)는 495억달러 흑자로 전년(556억달러 흑자)보다 61억달러 줄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기조를 보면 여전히 막대한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1기가 출범했던 2017년 179억달러를 기록한 후 2018년 139억달러, 2019년 114억달러, 2020년 166억달러로 감소 추세를 보인 대미 흑자 규모는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가파르게 늘었다.
2021년 227억달러, 2022년 280억달러에 이어 2023년에는 444억달러를 기록했고 2024년에는 556억달러로 정점을 찍으며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올해들어서도 지난달 대미 흑자 역시 1년 전보다 19억달러 늘어난 53억달러를 기록했다. 대미 수출(120억달러)이 반도체 호조세에 힘입어 역대 1월 기준 최고 실적을 경신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이러한 대미 흑자세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체 관세' 명분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20일(현지시간) 미 연방대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전 세계에 부과한 상호관세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즉각 백악관 집무실에서 무역법 122조에 근거한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한 10%의 '글로벌 관세' 부과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맞불을 놨다.
전문가들은 상호관세를 대체하는 이번 카드가 한국 등 수출국에는 훨씬 더 치명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위헌 판결을 받은 IEEPA는 본래 경제 제재 성격이 강해 법적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반면 트럼프가 새로 꺼내든 무역법 122조(국제수지 방어)와 301조(불공정 무역 관행 제재)는 미국이 수십 년간 통상 무기로 써오며 판례와 법적 근거가 탄탄하게 쌓인 '전통의 무기'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으로 뒤집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법 122조를 통해 "150일간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것은 일종의 '시간 벌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5개월 동안 301조 조사를 병행하며 엄청난 무역 흑자를 내고 있는 국가들을 압박해 기존 합의 이행을 강제하거나 추가적인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치밀한 계산이다. 무차별적이었던 상호관세와 달리 301조는 특정 국가의 핵심 산업(자동차, 반도체 등)을 핀셋으로 집어내어 고율 관세를 매기는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한국의 경우 막대한 대미 흑자를 배경으로 지난해 3500억달러(약 505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에 합의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대법원 위헌 판결로 이 투자 합의를 무효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미국이 더 치명적인 301조를 장전한 상황에서 합의를 뒤집기는 불가능하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한국은 지속되는 흑자 기조 속에서 대미 투자 이행 속도가 지지부진하거나 향후 전개될 비관세 장벽 협의마저 난항을 겪을 경우 '무역법 301조'의 완벽한 타깃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안 처리 지연을 문제 삼아 주력 수출품인 자동차 관세를 25%로 인상하겠다고 노골적으로 위협한 바 있다.
정부는 이러한 미국의 전방위적 압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앞서 9일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미국이 비관세 장벽 협상에서 진척이 없을 경우 한국에 대한 관세를 인상해 무역적자를 개선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여전히 상당한 대미 흑자는 양국 간 통상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는 만큼 국가 차원에서 대미 무역수지를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인위적으로 수출을 줄이기보다는 미국산 수입을 늘리는 방식 등을 통해 정교하고 전략적인 통상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