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 25% 폭탄을 막기 위한 한미 협상 초점이 ‘비관세 장벽’ 문제로 옮겨 붙었다. 한국을 상대로 대미투자 신속 처리를 압박하고 있는 미국이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세에 더해 비관세장벽이 한미 간 통상 이슈로 급부상한 건, 조현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 결정적이었다. 조 장관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정치·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 출석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 나눈 대화라며 “미국이 한국과의 비관세장벽 관련 협상에서 진척이 없을 경우 한국에 대한 관세를 인상해 무역적자를 개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비관세 장벽 이슈가 협상의 핵심 축으로 떠오르면서 관련 쟁점과 논란도 급부상했다. 미국은 비관세 장벽과 관련해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 구글에 대한 정밀 지도 허용,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추진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이 비관세 진척 부진을 이유로 관세 인상을 협박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한미 양국의 관세·안보 분야 협상 결과를 담은 공동 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는 “합의 정신에 따라 한국과 미국은 비관세 장벽을 논의하고 상호 무역 촉진을 위한 공약과 이행계획을 명문화해 올해 안에 한미 FTA 공동위원회에서 채택할 것이다”라고 돼 있다. 문구만 보면 향후 논의와 계획 수립을 약속한 수준으로 풀이된다. 구체적 제도 개선을 즉각 이행하기로 한 것도, 시간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미국이 ‘진척’이란 모호한 개념으로 관세 문제와 연결짓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없는 관세를 만들어서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합의 자체가 과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을 조기에 이행 단계로 끌어내기 위해 압박에 나선 미국이 사실상 추가 양보를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최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가진 화상회의 내용 등을 근거로 “미국은 대미투자특별법안 처리 지연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뭔가 건수가 있으면 숟가락을 얹어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미국이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비관세 장벽 얘기가 튀어나온 시점도 이런 평가에 의미를 더한다. 애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SNS를 통해 25% 관세 인상 위협을 언급한 배경은 대미 투자 관련 입법 문제였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 ‘통상 투톱’에 이어 조현 외교부 장관까지 미국으로 달려가 국회 특별법의 특위 구성 등 대미투자 이행 의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비관세 얘기가 불어져 나온 것이다.
정인교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지금 한국을 압박하고 있을 때 비관세 장벽도 빨리 타결됐으면 좋겠다 그런 차원에서 속도를 내라고 얘기하는 것일 수 있다”며 “협상을 하고 있는 건데 미국 관계자가 한마디 했다고 해서 우리가 해석을 하고 답을 하고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채찍질에 한국은 분주해졌다. 산업통상부는 11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방한 중인 릭 스와이처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이끄는 미 대표단을 만나 한-미 정상 간 공동설명자료 비관세 분야 합의사항에 대한 이행 현황과 향후 계획 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여 본부장은 한국 정부의 합의 이행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디지털 등 비관세 분야에서의 진전 사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협의하기로 했다. 또한 조만간 한미 FTA 공동위 개최를 목표로 향후 세부 계획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