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의 필수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한동안 주도권을 놓치자, 업계에서는 우려 섞인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2019년 HBM 전담 조직을 재편하며 우선순위를 낮췄던 ‘선택’이, 훗날 뼈아픈 ‘공백’으로 돌아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2026년 2월,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 HBM4 양산 및 출하를 공식 발표하며 강력한 반격에 나섰습니다. 2019년의 ‘다운사이클’이 남긴 숙제를, 2025년의 ‘재통합’과 2026년의 ‘기술’로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지 그 내막을 들여다봅니다.

당시는 반도체 시장 전체가 침체기를 겪던 시기였습니다. 삼성은 HBM의 시장성을 보수적으로 판단했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HBM 전담 인력을 범용 D램 부서 등으로 재배치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경영적으로는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었으나, 이 ‘숨 고르기’는 AI 붐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아쉬운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경쟁사가 기술을 축적할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고, 삼성은 다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지난 수년간 추격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2024년 5월 전영현 부회장 체제 출범 직후인 7월, 삼성은 ‘HBM 개발팀’을 신설하며 대응 수위를 높였습니다. 흩어진 역량을 한곳에 모아 ‘급한 불’을 끄겠다는 특단의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5년 11월, 삼성은 해당 조직을 다시 ‘D램개발실’ 산하로 재편했습니다. 이는 조직 축소가 아닌, ‘기술 시너지’를 위한 선택으로 해석됩니다. HBM4부터는 최선단 D램 공정과의 결합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에, 별동대보다는 본진(D램개발실)과의 ‘원팀’ 체제가 개발 효율과 성능 확보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삼성전자 메모리개발담당 황상준 부사장은 “기존 공정을 적용하던 전례를 깨고 최선단 공정을 적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 ▲10나노급 6세대(1c) D램 ▲파운드리 4나노 베이스 다이가 전격 도입됐습니다. D램개발실로의 조직 통합이 최선단 1c D램을 HBM에 빠르게 적용하는 데 기여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결과는 수치로 증명됐습니다. 삼성 HBM4는 JEDEC(국제반도체표준협의기구) 표준 속도인 8Gbps를 46%나 뛰어넘는 11.7Gbps를 안정적으로 확보했습니다. 최대 13Gbps까지 가능한 이 속도는 거대해지는 AI 모델의 데이터 병목 현상을 뚫어줄 핵심 열쇠가 될 전망입니다.

삼성은 이를 정교한 설계 기술로 극복했습니다. 저전압 설계를 적용하고 전력 분배 네트워크(PDN)를 최적화해, 전작 대비 전력 효율을 약 40% 개선했다고 밝혔습니다. 발열 문제 역시 칩을 뚫는 전극(TSV) 설계를 최적화해 열 저항을 10% 낮추고, 방열 특성은 30% 높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이번 양산을 기점으로 “2026년 HBM 매출이 2025년 대비 3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2019년의 ‘다운사이클’이 낳은 공백을, 2024~2025년의 치열한 조직 재정비와 2026년의 기술력으로 덮으며 반격에 나선 삼성전자. 이번 HBM4가 삼성 반도체의 자존심을 되찾아줄 확실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 시장의 이목이 다시 삼성으로 쏠리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