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수 동국대 석좌교수/前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기득권층 양보 끌어내야 개혁 성공
농식품수출 확대해 새 도약 꾀하길

최근 농협 개혁이 다시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농림축산식품부 차원에서 추진돼 온 감사와 개혁 논의를 넘어 이제는 정부 전체가 나서야 할 핵심 과제로 다뤄지고 있다. 이는 농협이 그만큼 중요한 조직이며, 그 개혁 또한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농협 개혁의 방향과 핵심 과제를 둘러싸고 논란도 적지 않다. 농협을 잘 아는 인사들은 정부의 농협 개혁이 “농협 전반의 구조와 기능 개편에는 소홀한 채, 회장의 해외 출장비 감축이나 보수 삭감 같은 지엽적 사안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더 나아가 “농협과 농업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부족한 사회운동가나 법조인들이 개혁을 주도”하고 있어 성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농협은 1961년 설립 이후 농업인과 농촌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동시에 역대 정부는 농협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여러 차례 개혁을 시도해 왔고, 대통령들 역시 농협 개혁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개혁도 있었지만, 실패하거나 실효성이 미흡했던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필자는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 농식품 분야에서 40여 년을 근무하며 농협 관련 업무를 폭넓게 담당해 왔고,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농협 개혁을 직접 추진한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당시 김성훈 농림부 장관의 주도로 농협과 축협의 통합을 추진하고 구조적 비효율 해소에 나섰다. 필자는 ‘농협개혁 추진단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하면서 전국을 돌며 개혁 과제를 설명했다. 통합 반대 측에서는 “논에서 소를 키우는 농가가 어디 있느냐”며 강하게 반발했고, 축협 고위 책임자가 할복을 시도할 정도로 저항은 거셌다. 그럼에도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개혁을 정착시킬 수 있었다.
두 번째는 2009년 이명박 정부 시기였다. 2000년 개혁 이후에도 농협이 “돈 장사에만 치중하고 농민을 위한 본래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심도 있는 논의 끝에 농협의 기능을 경제 부문(유통·자재·지도)과 금융 부문(은행·보험)으로 분리하는 이른바 ‘신·경 분리’ 개혁을 단행하고,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해 각 부문의 전문성을 강화했다. 필자는 당시 농협을 담당하던 제1차관으로서 개혁을 총괄하며 입법화를 추진했다. 천신만고 끝에 국회를 통과한 농협법은 2009년 6월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여야 대표가 함께한 가운데 법 통과 기념 행사를 열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역사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농협개혁은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제도 개혁으로 평가된다.
2026년을 맞은 지금 농협은 다시 개혁의 갈림길에 서 있다.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2009년 농협법 개정 이후 어느덧 17년이 흘렀다. 농협에 문제가 있다면 고치는 것은 당연하며, 고령화와 농촌 경제 변화, 인공지능(AI) 시대 도래에 부응하는 개혁 역시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장과 동떨어진 탁상공론이나 외국 사례의 무비판적 모방개혁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농협 전반의 조직과 기능을 들여다보면 중앙회와 일선 조합의 기능적 취약성, 상위 조직의 비대화, 인사와 운영상의 문제, 법·제도적 미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개혁 핵심은 농협의 근본 가치를 재정립하는 것이다. 이번 개혁에서도 농협의 기본 정신을 다시 새겨야 한다. 농업협동조합법 제1조는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이 세 가지 원칙을 모든 농협 개혁의 최상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특히 농촌과 농업 현장, 그리고 일선 조합의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농민과 농촌을 위한 역할은 줄어들고, 금융 중심 조직으로 변질됐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금융 기능의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농협의 존재 이유를 압도해서는 안 된다. 현재 농협중앙회 상부 조직에 금융권 출신 인사들이 다수 포진한 현실이 과연 농협 본연의 역할과 부합하는지 면밀히 점검해야한다.
농협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이번 농협 개혁은 핵심 법령 개정에 집중하고, 그 과정에서 기득권층의 실질적인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임기 4년 단임의 회장이 농협의 모든 문제를 단기간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과도한 욕심과 조급함은 오히려 개혁을 실패로 이끌 수 있다. 이미 차기 농협 회장 후보들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현 체제의 이익을 누려온 기득권층의 과감한 결단과 양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9년 개혁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개혁은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먼저 양보해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던 말을 다시 새기자.
농협은 정부 정책에 부응하되 단순한 추종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보완자이자 실행 주체가 돼야 한다. 농정 대전환 기조에 맞춰 농산물 유통구조 개혁, 스마트농업 확산, 청년 농업인 육성 등을 중점 과제로 제시한 것은 바람직하다. 여기에 더해 농식품 수출 확대라는 국가 전략 목표에도 농협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농협이 ‘K-농식품 수출 시대’를 선도하여 한 단계 도약한다면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이다. 단기적 처방이나 내부 문제 해결에 그치지 말고, 넓은 관점에서 국가 전략 차원으로 농협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