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관세 인상 '지렛대' 삼아 농산물·데이터 빗장 열기
"국익 최우선으로 정교한 논리로 비관세 협상 임해야"

한미 통상 당국 고위급 인사의 만남을 기점으로 미국발(發) 통상 압박의 파고가 ‘관세 재인상’에서 ‘비관세 장벽 해소’로까지 전선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미국이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재인상(15%→25%) 카드를 지렛대 삼아 그동안 굳게 닫혀있던 한국의 농산물과 데이터 시장의 빗장을 열겠다는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통상부는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11일 방한 중인 릭 스위처 미국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 면담을 갖고 ‘한미 정상 간 공동설명자료(JFS·팩트시트)’의 비관세 분야 이행 계획을 집중 논의했다고 밝혔다.
양국이 지난해 11월 합의한 팩트시트에는 △미국산 자동차 안전기준 동등성 인정 상한 철폐 △디지털 분야에서의 미국 기업에 대한 비차별 의무 등 비관세장벽 해소와 관련된 핵심 합의 내용이 담겼다. 양측은 당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를 통해 이에 대한 구체적 이행계획을 채택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여 본부장은 이날 면담에서 한국 정부의 확고한 합의 이행 의지를 재차 전달했다.
아울러 양측은 디지털 등 비관세 분야에서의 진전 사항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조만간 한미 FTA 공동위 개최를 목표로 향후 세부 계획을 지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이번 면담은 우리 정부가 기존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강조하며 대미(對美) 리스크 관리에 나서는 자리로 해석된다. 미국 정부가 관세 원상 복구 방침을 시사한 상황에서 한국의 비관세 장벽 해소까지 전방위로 압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이 비관세 장벽 해소를 관철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관세 재인상을 ‘협상 레버리지’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9일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회에서 “미국이 비관세 장벽 협상에서 진척이 없을 경우 한국에 대한 관세를 인상해 무역적자를 개선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최근 국내 언론을 통해 그리어 USTR 대표가 “비관세 장벽 해소는 트럼프 대통령의 직접 지시”라고 언급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의 요구 사항은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 △구글 정밀 지도 데이터 반출 허용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추진 중단 등 한국 내 민감한 이슈들에 정조준돼 있다.
이 때문에 통상가에서는 이번 비관세 협상이 지난해보단 훨씬 까다로운 난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관세 협상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며 관세를 낮추는 ‘자본 중심의 빅딜’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국의 법과 제도를 개방해야 하는 ‘제도와 규범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농산물 시장 개방이나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중단 요구 등은 국내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고 입법 절차가 필수적이다. 지식재산권이나 정밀 지도 반출 문제 또한 안보 이슈와 직결된다.
결국 미국이 ‘관세 25% 인상’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볼모로 잡고 한국의 제도적 변화를 압박하며 사실상 ‘양자택일’을 강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 입장에서는 이미 합의된 팩트시트에 담긴 비관세 장벽 논의 속도가 더디다는 점에 불만을 품고 압박 수위를 높이는 것”이라며 “미국이 입장을 분명히 한 만큼 우리 통상 당국도 국익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교한 논리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