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너머] 집값과의 전쟁 선포⋯‘사다리’만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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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이기는 정부도 없지만, 정부를 이기는 시장도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SNS에 남긴 말이다. 사실상 ‘집값 전쟁’ 선포다. 지난해 6‧27, 10‧15 두 차례 대출 규제와 9‧7, 1‧29 공급 대책에도 집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강경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정부가 꺼낸 카드는 강했다. 서울 전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3중 규제’로 묶였다. 갭투자는 막혔고 실거주 의무가 붙었으며 대출 문도 좁아졌다. 역대급 규제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시장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규제의 역설도 나타났다. 대출 규제의 ‘경계선’인 15억원 이하 아파트에서 ‘키 맞추기’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KB부동산 월간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한강 이남 11개구 중소형(전용면적 60~85㎡) 평균값은 18억269만원으로 집계됐다. 서울에서 중소형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18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장이 정부 기조와 반대로 움직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집값 하락 요인보다 상승 요인이 더 크기 때문이다. 수요가 집중된 서울의 주택은 여전히 부족하고 집값이 오를 것이란 불안과 기대도 공존한다.

문제는 규제가 집값보다 먼저 ‘주거 사다리’를 끊어냈다는 점이다. 무주택자는 대출 규제로 자가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 유주택자의 상급지 갈아타기도 사실상 막혔다. 현금 부자가 아니면 내 집 마련을 꿈꾸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정부는 다시 공급 카드를 꺼냈다. 1‧29 대책으로 6만가구 공급을 발표했다. 그러나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 용산, 과천 등 핵심 지역에서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세종청사와 용산국제업무지구에는 공급대책을 비판하는 근조화환이 줄지었다. 과천에서는 경마공원 이전 반대 궐기대회와 삭발식까지 열렸다.

시장은 공포가 아니라 확신으로 움직인다. 대출 문을 걸어 잠그고 규제의 그물망을 덮는 방식만으로는 자산 양극화와 주거 불안이라는 본질을 해결하기 어렵다. 오히려 규제 속에서 현금 부자들만의 리그는 공고해졌다.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잃은 채 전·월세 시장으로 밀려났다.

정부가 진정으로 시장과 싸우려 한다면 이제는 규제의 칼날이 아니라 공급의 신뢰를 세워야 한다. “정부를 이기는 시장은 없다”는 말이 “정부와 함께 무너지는 서민”으로 이어져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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