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공급 패러다임 전환 추진
모든 청년 대상 재무상담 실시
금융 사각지대 해소 앞장설 것

화려한 취임식 대신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의 상담 창구를 찾는 행보로 임기를 시작한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겸 신용회복위원장)의 일성이다. 20년간 대학에서 상법을 연구한 학자이자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을 지낸 실무 전문가인 그는, 이제 서민금융 패러다임을 ‘자금 공급’에서 ‘국민의 권리’로 바꾸는 대전환을 선도하고 있다. 본지는 취임 한 달을 넘긴 김 원장을 최근 만나 ‘K-서민금융’의 미래를 들었다.
김 원장은 취임 직후 방문한 관악 현장에서 정책금융의 가장 큰 걸림돌인 ‘공급자 중심의 관성’과 맞닥뜨렸다. 김 원장은 “상담 현장에서 마주한 서민들은 도움을 기다리는 수혜자가 아니라 정당한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고객’이었다”며 “하지만 복잡한 상품명이나 종이 서류 중심의 번거로운 절차가 여전히 공급자 편의로 설계돼 서민들에게 ‘보이지 않는 문턱’이 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민금융진흥원(이하 서금원)의 역할을 시혜를 베푸는 곳이 아닌 정보 부족으로 가로막힌 국민의 권리를 연결해 주는 ‘가교’로 재정의했다. 이를 위해 종합 플랫폼 ‘서민금융 잇다’를 통해 절차적 장벽을 허무는 한편, ‘포용(Inclusive)’이라는 용어도 점검대에 올렸다. 공급자가 시혜를 베푸는 듯한 언어를 걷어내야 서민들을 ‘당당한 고객’으로 대우하는 조직 문화가 시작된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서금원은 수평적 가치를 담은 새 용어를 공모하며 조직 체질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혁신 의지는 지표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서금원은 지난해 목표를 초과한 7조2069억 원의 정책금융을 공급하며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이러한 외형적 성장이 결코 ‘내실’을 의미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공급액 달성은 공급자 시선의 지표일 뿐”이라며 “이제는 양적 성장을 넘어 지원을 받은 고객들이 실제 자립했는 지를 반영하는 '질적 변화’와 공적 플랫폼으로서의 역할 확대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서민금융 실적이 늘고 올해부터 햇살론과 불법사금융예방대출 금리가 대폭 낮아지면서 시장의 우려도 커진 상황이다. 금리 인하로 수요가 폭증할 경우 고액 자산가나 사치 이용자들에게 자금이 흘러가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러한 우려를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한 정교한 필터링으로 정면 돌파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내부조사로 파악한 바로는 도덕적 해이가 우려되는 고객들의 비중은 1만분의 1 수준으로 극히 미미했다"며 "사실상 도덕적 해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한 수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발생하는 누수엔 통신 이용료 납부 내역이나 소비 행태, 구직 활동 정보 등 비금융 정보(대안정보)를 금융 정보와 결합해 성실상환자를 선별하고 지원의 사각지대를 정교하게 메우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올해 도입한 성실 상환 시 금리 및 한도를 우대하고 은행권 신용대출을 연계하는 ‘크레딧 빌드업(Credit Build-up)’ 체계를 촘촘히 하는 핵심 근거가 된다. 그는 “데이터는 수요자의 절실함을 수치로 읽어내는 도구”라며 “단 한 명의 고객도 제도적 문턱 때문에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저신용자 중에서도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청년과 군 장병을 꼽았다. 대학교수로서 청년들을 가르치며 ‘코로나 세대’의 정서적 고립을 목격해온 그는, 이들을 위한 ‘금융 교육’이 정책 자금 공급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는 지난 1월 업무보고 자리에서 필요하다면 직접 군부대 명예 강사로 현장에 가겠다고 밝힐 정도로 이 문제에 적극적이다.
김 원장은 “코로나 시절을 겪은 대학생들은 물리적 단절로 인해 사회적 감각의 상당 부분을 잃어버려 주변의 조언 대신 인터넷 정보에만 의존하다 잘못된 금융 선택에 너무 쉽게 노출된다”며 “특히 병장 월급 150만원 시대에 목돈을 들고 전역하는 군 장병들이 밤마다 휴대폰으로 게임 머니를 쓰다가 자칫 신용불량자가 될 수 있기에, 업무보고에서 직접 부대 현장에 가겠다고 고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서금원은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청년 모두를 위한 재무상담’을 실시한다. 온라인 재무진단으로 시작해 개인별 보고서를 제공하고 이를 전문 상담으로 연결해 스스로 자산 관리 로드맵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예방적 체계다. 그는 “일방적인 자금 지원에서 나아가 건강하게 굴릴 수 있는 ‘나침반’을 쥐어주는 것이 현장에서 실천하려는 진짜 포용금융”이라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서민금융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내년 출범을 목표로 추진 중인 ‘서민금융안정기금’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금융사 출연금에 의존하는 현행 재정 시스템은 코로나와 같은 급작스러운 재난 상황에서 탄력적인 자금 운용이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새롭게 결정되는 단년도 예산 편성 방식으로는 돌발적인 경기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는 “상시 재원을 확보하면 예산 규모가 아닌 실제 수요에 따라 취약계층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며 “특히 경제 위기 시 기금운용계획의 20~30% 이내에서 신속한 탄력 운용이 가능해져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적기에 도울 수 있는 ‘안정적 저수지’가 마련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서금원은 올해 상반기 중 전문기관 컨설팅을 완료하고 기금 도입에 따른 조직 체계와 업무 프로세스를 구체화할 계획이다.
이러한 혁신 행보 바탕에는 그의 롤모델인 미국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 의원이 있다. 워런이 금융 불평등과 싸우며 소비자 보호의 상징이 되었듯, 김 원장 역시 금융이 모두의 권리임을 알리는 데 남은 임기를 바칠 생각이다. 김 원장은 “워런 상원 의원처럼 금융 불평등을 해소하고 금융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권리이자 기회임을 알리고 싶다”며 “임기 동안 고객과 직원들을 진심으로 먼저 봤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 원장은 국내 서민금융 시스템을 세계적인 표준 모델로 정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원장은 “과거엔 우리가 선진국을 우러러봤지만 이제는 세계가 한국을 선진국이라 부른다”면서 “하지만 진정한 선진국은 압축 성장의 눈부신 햇볕 뒤에 가려진 짙은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는 나라”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음지에 있는 이들을 일방적으로 품는 시혜를 넘어 그들과 함께 나아가는 동반의 가치를 구현해 전 세계가 배우러 오는 국가 대표 브랜드 ‘K-서민금융’ 모델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