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MSG] 가문에서 개인으로...울타리였던 호적, 퍼즐이 된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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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 전국 법원에서 다루는 소송사건은 600만 건이 넘습니다. 기상천외하고 경악할 사건부터 때론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까지. ‘서초동MSG’에서는 소소하면서도 말랑한, 그러면서도 다소 충격적이고 황당한 사건의 뒷이야기를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받아 전해드립니다.

▲서울 종로구 북촌로 헌법재판소. (뉴시스)

과거 부모들은 아이가 속을 썩일 때마다 “호적에서 파버린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곤 했다. 이 표현은 호주를 정점으로 가족 구성원을 하나의 울타리에 묶어두던 호적 제도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강력한 상징이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같은 인식은 제도 폐지 이후에도 남아 “부모·자식 인연을 끊고 싶다”며 호적에서 나갈 수 있는지를 묻는 법률 상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호적은 폐지됐지만, 그 기억과 오해는 아직 남아 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현행 가족관계등록부 제도는 개인을 기준으로 신분 관계를 기록하는 체계다. 이는 호주를 중심으로 신분 관계를 공시하던 기존 호적 제도가 폐지되면서 도입됐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호주제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08년부터 가족관계등록부 제도가 시행, 모든 신분 기록은 개인별 등록 방식으로 전환됐다. 현재는 과거 호적 기록을 제적등본으로만 확인할 수 있으며, 2008년 이후의 혼인·이혼·사망 등 사항은 제적등본에 기재되지 않는다.

과거의 호적은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한 가문의 혼인, 출생, 사망 이력이 한눈에 드러나는 수직적 가계도였다. 서류 한 장이면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누가 입적됐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반면 가족관계등록부는 개인을 중심으로 기록을 재편했다. 가족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기록을 무분별하게 들여다보던 관행을 끊어냈다는 점에서, 개인정보 보호 등 시대적 가치를 반영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챗GPT 이미지 생성)

다만 이 같은 변화가 항상 실무 친화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속이나 연금 수령, 각종 행정 절차에서는 이미 제적된 가족 구성원의 신분 관계나 제적 사유를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여전히 발생한다. 이때 가족관계등록부만으로는 과거의 가족 관계를 온전히 재구성하기 어렵다.

제적등본은 일상적으로 접하는 서류가 아니다 보니, 상속 절차에서 처음 발급받는 경우가 많다. 고령의 부모가 사망한 뒤 제적등본을 확인하다가 가족 누구도 알지 못했던 이름을 처음 마주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과거 동네 사람의 부탁으로 잠시 입적해 줬거나, 읍장이었던 조부가 고아를 입적한 뒤 해외 입양을 보낸 사례도 종종 발견된다. 이 경우 상속 관계 정리를 위해서는 다시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하고,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현행 가족관계등록부는 형제자매 관계나 대습상속 관계를 한 번에 확인하기도 어렵다. 형제자매임을 증명하려면 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를 각각 발급받아 관계를 거꾸로 추적해야 한다.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 구조상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게 흩어져 있다.

이보라 변호사는 “일본에서 장기간 거주한 교포들의 경우 한국의 제도 변화를 제때 따르지 못해 호적상 이름과 일본 내 성명, 생년월일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과거에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관계를 추적할 수 있었지만, 개인별 등록 체계로 전환된 이후에는 사망한 상속인의 생애를 재구성하기 위해 파편화된 서류들을 ‘퍼즐 맞추기‘ 하듯 대조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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