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너 '기명 전자투표'로 진행…경영실패 책임 묻기 어려운 구조
금감원 "경영진 견제·투명한 지배구조" 요구 상충

금융당국이 회계법인의 지배구조 투명성과 경영진 견제를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4대 회계법인 중 하나인 EY한영의 대표 선임 구조는 이 같은 흐름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성장 실적에도 불구하고 박용근 대표가 3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파트너 전원이 실명을 드러내고 투표하는 이른바 ‘기명 전자투표’ 방식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어서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박 대표는 지난해 12월 열린 사원총회에서 파트너 투표를 거쳐 연임을 확정지었다. 만장일치로 찬성표가 모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표는 2020년 2월 감사본부장 시절 서진석 전 대표가 사임한 후 임시 대표로 오른 바 있다. 같은 해 3월 처음 대표로 선임된 뒤 2022년 재연임에 성공했으며, 이번 결정으로 세 번째 임기를 맞게 됐다.
EY한영은 파트너들이 지분을 보유한 유한회사 형태의 회계법인이다. 대표이사 선임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운딩 절차를 수행한 후, 대표이사 후보자를 확정해 최종적으로 사원총회를 개최해 투표를 진행한다.
파트너들이 대표이사를 선출하는 방식을 띠지만, 실제 대표 선임 과정은 모든 파트너가 한자리에 모여 실명을 밝힌 상태에서 전자투표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익명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구조다. 삼일, 삼정, 안진 등 다른 대형 회계법인은 무기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기명투표 방식이 사실상 대표에 대한 건전한 견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보고 있다.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구조에서는 현직 대표나 경영진에 불리한 선택을 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경영 성과와 무관하게 연임할 수 있게 한다는 지적이다. 유한회사에는 의결 방식에 대한 법적 제한이 없어 기명투표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다만, 대표 선출 등 민감한 안건에서 기명투표가 적용될 경우, 사원들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전문가 집단은 자율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면서도 "감사에 영향 미쳤는지는 사후에 살펴볼 부분"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박 대표는 최근 수년간 EY한영의 실적이 가파르게 악화하는 상황에서도 3연임에 성공했다. EY한영의 영업이익은 제41기(2020년 7월~2021년 6월) 262억 원에서 제45기(2024년 7월~2025년 6월) 약 91억 원으로 약 65%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215억 원에서 27억 원으로 87% 줄었다.
업계 불황을 고려하더라도 EY한영의 경쟁력이 다른 4대 회계법인과 비교해도 눈에 띄게 약화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감사·컨설팅 시장 전반이 어려운 환경이긴 하지만, EY한영의 이익 감소 폭은 과도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 대표가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에는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공식적으로 표출되기 어려운 지배구조가 지목된다.
이는 금융당국이 회계업계에 요구해온 지배구조 개선 방향과도 상충한다. 금감원은 최근 몇 년간 대형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경영진 견제와 의사결정 투명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지난해 10월 이찬진 금감원장은 국내 12개 회계법인 CEO들과의 간담회에서 "감사품질과 공익을 핵심 가치로 두기 위해서는 회계법인의 건전한 지배구조가 중요하다"며 "경영진 견제기구를 구성하는 등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해 주길 바란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EY한영의 기명투표 방식은 이러한 요구와 정반대의 구조라는 평가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구조가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 추궁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이다. 실적이 악화하더라도 대표 교체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내부 혁신 동력이 약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박 대표는 다른 대표와 비교해도 출자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박 대표의 과도하게 높은 지분율이 이러한 폐쇄적 구조를 심화시킨다고 분석한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박 대표의 출자 비율은 13.08%로, 경쟁사인 삼일(3.95%), 삼정(9.54%), 안진(5.08%) 등 다른 주요 회계법인 대표들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유한회사 의결권은 지분에 비례하는 만큼 박 대표의 지배력이 견고하고, 여기에 반대 의사를 차단하는 기명투표제까지 더해지면서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회계업계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회계법인이 공공성을 띤 전문 서비스 조직이기 때문"이라며 "대표 선임 과정에서조차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대외적으로 신뢰를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Y한영 관계자는 "대표 선출 투표는 한영회계법인 법무실 및 외부 법무법인 입회하에 전자식 기명투표로 진행된다"며 "EY 글로벌은 한영회계법인의 대표이사 선임에 관여한 적도 없고, 관여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