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력사망 제도 확산…생명보험 ‘자살면책’ 기준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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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사망 합법화 흐름 속 보험금 지급 기준 재정립
조력사망 입법화한 국가들, 기저질환에 의한 자연사로 의제해 ‘자살면책 배제’

(이미지=ChatGPT 생성)

조력사망 제도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생명보험 실무에도 구조적 변화가 불가피해지고 있다. 존엄한 임종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흐름 속에서, 조력사망을 자살이 아닌 자연사로 볼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보험금 지급 기준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1일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대 이후 조력사망을 합법화하거나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국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네덜란드·벨기에·캐나다·스페인·포르투갈 등은 이미 입법을 완료했고, 영국과 프랑스도 2025년 하원을 통과한 관련 법안을 상원에서 심의 중이다. 조력사망은 말기 환자가 본인의 명확한 의사에 따라 의료진의 처방 또는 직접 투여를 통해 생을 마감하는 모든 의료적 지원을 뜻한다.

주목할 점은 조력사망 제도의 확산이 윤리적 합의나 정책 선택을 넘어 기본권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서는 입법부보다 사법부가 문제를 제기하며 제도화가 진전됐다. 완화의료로도 해소되지 않는 고통의 실체를 인정하는 사회적 공감대와 자기결정권 및 존엄한 임종을 핵심적 기본권으로 인식하는 인권론적 관점이 조력사망 합법화의 주요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생명보험은 핵심적인 제도 조정 대상이 됐다. 일반 생명보험 계약에는 보험 개시 후 일정 기간 내 가입자가 자살로 사망한 경우 보험금 지급을 제한하거나 기납입보험료의 일부를 지급하도록 하는 규정이 존재한다.

이에 따라 조력사망을 제도화한 국가들은 조력사망을 자살이 아닌 기저질환에 의한 자연사로 의제함으로써 생명보험의 자살면책조항 적용을 차단하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는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조력사망이 자살이나 살인 등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보험계약에 불리한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살면책조항의 적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반면 조력사망을 비범죄화된 자살로 분류하는 스위스는 일반 자살과 동일한 면책기간을 적용하고 있다.

더불어 조력사망 합법화 국가의 보건당국과 보험업계는 가입자가 조력사망을 목적으로 질병을 은폐한 채 보험에 가입하는 역선택 및 고지의무 위반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대응 방안을 긴밀히 논의해 왔다.

이에 캐나다는 정부 차원의 강력한 보고체계를 통해 보험회사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완화했다. 의료진은 환자가 조력사망을 요청한 날짜, 질병의 지속 기간 등을 보건부에 상세히 보고해야 하고 보험 청구시 보험회사는 가입자의 동의를 받아 보건부의 보고서를 조회하도록 했다. 조력사망에 대한 자살면책 적용 배제를 의무화한 프랑스는 보험회사의 계약 체결 거절권과 고지의무 위반에 대한 방어권을 명시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보험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도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 제정과 조력사망에 대한 찬성 여론이 76.3%에 이르는 등 사회적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향후 임종기 자기결정권 확대를 위한 입법 논의가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전망했다.

보험연구원은 “조력사망 합법화는 사망 위험을 보장 대상으로 하는 보험산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보험회사는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와 관련 입법 동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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