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제약바이오 산업의 무게추가 빠르게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 과거 ‘추격자’로 인식되던 중국 기업들이 이제는 글로벌 기술이전과 신약 개발의 기준점(reference)으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K-바이오의 생존 전략 역시 근본적인 재정립이 불가피해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28일 ‘불확실성의 시대, 2026 글로벌 제약바이오산업의 방향과 K-바이오의 기회’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중국을 축으로 재편되는 글로벌 산업 지형과 한국 기업의 대응 전략을 논의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팀장은 글로벌 기술이전·M&A 시장에서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최근 패널 토론에서 ‘지난 20~25년간 서구권 기술이전이 기준이었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중국 딜이 벤치마킹되는 것을 목격했다’는 발언이 나왔다”며 “이는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이 형성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글로벌 기술이전 및 공동개발 상위 거래에는 중국 바이오텍이 다수 포진해 있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임상 진입 속도 역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영국 글로벌벤처네트워크 대표는 중국 바이오 생태계의 성장 배경을 ‘사며 배우는 전략’으로 설명했다. 그는 “중국은 2017년 전후부터 미국 바이오텍을 적극적으로 인수·투자하며 경험을 축적했고, 미국에서 훈련된 인력을 대규모로 흡수해 생태계를 만들었다”며 “그 결과가 지금 글로벌 거래와 파이프라인에서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기술이전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면서, K-바이오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 속에서 K-바이오는 ‘기술이전 중심의 생존 구조’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팀장은 “바이오 기업은 기술이전을 하지 못하면 결국 버티기 어렵다”며 “기술이전을 성사시키려면 임상에 얼마나 빨리 진입하느냐가 관건이고, 이제 속도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조 대표 역시 “벤처는 자금 소모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가격을 더 받으려다 딜 타이밍을 놓치면 오히려 생존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며 “중국 기업들이 보여주는 공격적인 임상 진입 속도는 한국 바이오에도 냉정한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의 정면 비교에서 K-바이오가 선택할 수 있는 차별화 전략으로는 ‘플랫폼’이 제시됐다. 허 팀장은 “중국은 개별 에셋(asset)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하는 전략을 택하고 있지만, 한국은 동일한 방식으로 경쟁하기 어렵다”며 “한국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플랫폼 중심 전략”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빅파마가 원하는 것은 단일 후보물질이 아니라 반복 적용 가능한 기술”이라며 “전달 기술, 제형 개선, 확장 가능한 플랫폼은 여전히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AI 신약개발을 둘러싼 경쟁 구도 역시 중국과의 격차를 실감하게 하는 분야로 꼽혔다. 김이랑 온코크로스 대표는 “최근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변화는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들이 전통 제약사와 손잡고 AI 신약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점”이라며 “AI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 인프라가 됐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자본과 컴퓨팅 파워에서 중국과 글로벌 빅테크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아시아 인구가 전 세계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동아시아 환자 기반 데이터와 아시아 특이 질환은 국내 AI 신약개발 기업에게 충분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빅파마 사업개발(BD)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도 공유됐다. 원종헌 LG화학 부문담당은 “최근 2년간 허가된 신약의 약 55%가 바이오텍에서 나왔다”며 “혁신의 중심은 이미 바이오텍으로 이동했고, 대형 제약사는 벤처 생태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명확히 ‘협력’에 방점을 찍었다.
원 부문담당은 “중국 바이오텍의 속도와 인력 규모를 감안하면 정면 경쟁은 쉽지 않다”며 “향후 1~2년은 골든타임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초기 임상과 PoC를 빠르게 확보하는 전략이 현실적인 선택지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내에서도 임상 속도를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