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혁신ㆍ일자리 수호' 두 가치 충돌
대기업 노조 "사전협의ㆍ속도조절" 요구
중소기업 "외국인 노동자 고용도 한계
로봇, 인건비 감소 등 기업 경쟁력과 직결
AI 등 활용 직무 늘어 일자리 증가할 수도

휴머노이드 로봇의 산업 현장 투입이 가시화되면서 노동 현장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대기업 노조는 ‘고용 충격’을 이유로 ‘불허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지만,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계는 로봇을 경영 정상화의 유일한 대안으로 인식되며 명확한 시각차다 나타나고 있다. 기술 혁신과 일자리 수호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로봇은 이미 한국 제조업의 운명을 가를 피할 수 없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25일 산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 제조 현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이 노사 갈등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노조는 로봇 자동화가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사전 협의와 도입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있다. 로봇이 생산 공정에 본격 투입될 경우 인력 재배치와 신규 채용 축소로 연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기업 노조의 문제 제기는 단순한 고용 규모를 넘어 경영 판단 영역에 대한 개입으로 확장되는 양상이다. 로봇 도입의 필요성 자체보다 절차와 속도를 둘러싼 견해차가 커지면서 노사 간 힘겨루기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완성차·로봇 산업이 속도전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의사결정 지연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반면 중소 제조업계의 상황은 다르다. 고령화와 청년 기피로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소규모 제조업체들 사이에서 로봇은 ‘대체재’가 아닌 구인 실패를 보완할 ‘돌파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5년 외국인력 고용 관련 종합애로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1223개사 중 82.6%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이유로 ‘내국인 인력난’을 꼽았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올해 ‘로봇활용 제조혁신 지원사업’ 예산을 본예산 기준 250억 원에서 450억 원으로 늘린 것도 이런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 사업은 중소·중견기업 제조 공정에 로봇 시스템을 도입해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고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사업이다. 중기부는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약 10년간 419개 기업에 2000대의 로봇 도입을 지원했다. 이를 통해 생산성은 63.8% 늘었고 불량률은 70.1% 감소했다. 납기 준수율도 14% 개선됐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금오캐스트는 해당 사업을 통해 생산량을 43% 늘리고 공정 불량률을 87% 낮췄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제조 중소기업의 공장 환경은 대기업만큼 자동화·정비돼 있지 않고 위험하거나 거친 업무가 많다 보니 청년 기피 현상이 뚜렷하다”며 “외국인 노동자 고용에도 한계가 있어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로봇 도입에 나서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전략 측면에서 로봇은 단순 설비를 넘어 기업 경쟁력으로 직결되고 있다. 증권가에 따르면 미국 제조업 평균 인건비는 연간 7만~8만 달러 수준이다. 반면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는 배터리 교환 방식으로 사실상 24시간 가동할 수 있다. 초기에는 시간당 원가가 9.4달러에 달하지만, 생산 대수가 3만 대를 넘으면 1.2달러까지 떨어진다. 이는 중국 제조업 인건비의 약 6분의 1 수준으로 추정된다.
제도적 준비는 과제다. 로봇 도입 이후 사라질 직무와 새로 생길 직무에 대한 전환 교육 체계, 성과를 어떻게 공유할지에 대한 보상 구조, 노사 협의의 경계를 어디까지 설정할지에 대한 기준이 아직 명확하지 않다. 기술 도입 속도보다 제도적 논의가 뒤처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재권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교수는 산업통상부 웹진 인터뷰에서 “일손이 부족한 곳부터 휴머노이드를 투입해야 한다”며 “저출생·고령화로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산업 현장에 휴머노이드가 투입돼 사람과 협업할 수 있다면 지속적이고 견고한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로봇이나 인공지능 도입으로 현장의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단언하긴 어렵다”며 “오히려 이를 활용하는 직무가 늘어나면서 전체 일자리 수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