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40% 이상 지역 공급 목표 "사업성보다 입지 조건만 강조"
지방선거 앞두고 커지는 압박⋯재계 "유연한 운용 필요" 목소리
정치 주기-산업 투자 간극에 ‘곤란’⋯‘법인세 인하’ 유인에도 “글쎄”
150조 원 규모의 초대형 정책금융인 ‘국민성장펀드’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업들을 향한 ‘투자 압박용 카드’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기치로 내걸었지만, 선거 국면과 맞물리며 자본의 흐름이 시장 원리가 아닌 정치적 표심(票心)에 따라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국가 미래를 위한 마중물이 자칫 선거판의 ‘투자 할당제’로 전락해 산업 경쟁력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인공지능(AI)·이차전지·배터리·우주·항공 등 첨단산업 기업들은 올해부터 본격 추진되는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자금 지원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대규모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이 필수적인 산업 특성상, 정책금융을 통한 자금 조달은 기업들에 사실상 생존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당초 첨단산업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정부가 설계한 대규모 정책금융 프로그램이다. 기업에 대한 초저리 대출을 비롯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신설 법인이나 공장 설립 시 지분 투자자로 참여하고, 기술 기업 인수합병(M&A) 자금까지 지원하는 구조다. AI 데이터센터와 첨단산업단지 조성에 필요한 전력망·발전·용수 시설 등 인프라 구축 사업에도 참여하며, 첨단산업 설비투자와 R&D 자금은 2%대 국고채 금리 수준으로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다.
자금 확보가 시급한 기업들은 국민성장펀드 대출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수요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기대와 달리 조건의 문턱이 높아 실제 접근이 쉽지 않다는 불만이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펀드 자금의 40% 이상 지역 공급’ 기준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정부·지자체·정책금융기관 합동 간담회에서 “국민성장펀드의 40% 이상을 지역에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지역 첨단산업 프로젝트 발굴을 주문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은 국민성장펀드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담보가 될 신규 투자나 공장을 지방에 조성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정부 정책금융에서 담보를 요구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지만, 첨단산업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운용되는 펀드가 저리 대출과 투자 심사 과정에서 사업성보다 신규 투자 입지 조건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치 일정과 정책 금융이 맞물리고 있다는 점도 우려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지역 투자를 가시적 성과로 만들려는 압박이 산업 정책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방 투자를 조건으로 내걸 경우 적자 기업들은 어떻게 자금을 조달하라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자금 여력이 부족해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지방에 새로운 공장 설립까지 요구받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국민성장펀드가 ‘단군 이래 최대 규모’로 불릴 정도로 기업들의 기대가 큰 정책금융인 만큼, 보다 유연한 운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금 지원 조건에 ‘지방’이 강조되면서, 기업 입장에서는 정책 취지와 무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성장펀드가 진짜 산업을 위한 금융 수단이라기보다 금융권이 정무적으로 정치권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결과처럼 보인다”며 “유독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 투자 성과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 위주로 자금이 흘러가고 그 과정에서 특정 지역이 우선시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