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775만8839편 저자 성별 따른 심사기간 분석…여성 118일·남성 103일

의·생명 연구 성과가 학자의 성별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여성의 논문이 남성의 논문보다 더 오랜 시간 심사를 받는 경향성이 확인된 것이다. 그간 학계의 임금 및 고용 성차별은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됐지만, 논문 심사 자체의 편향성을 확인한 사례는 드물다.
21일 데이비드 알바레스-폰세(David Alvarez-Ponce) 교수 연구팀은 여성이 집필한 의생명 및 생물학 논문은 남성의 논문보다 심사 과정에 소요되는 기간이 7.4%에서 14.6%까지 길다는 사실을 데이터베이스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PLOS Biology)에 이날 발표됐다.
연구팀은 세계 최대 의·생명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펍메드(PubMed)에서 총 3655만5430건의 초록과 그에 부수되는 메타데이터를 추출했다. 그 중 이름을 통해 성별을 추정할 수 있는 저자는 8257만4892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35.5%에 해당하는 2934만9577명을 여성, 나머지 5322만5315명을 남성으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승인일 정보가 없거나, 심사기간이 하루 미만인 논문을 제외하고 8860개 학술지에 게재된 775만8839편의 논문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여성이 작성한 논문은 최소 7일에서 최대 15일까지 늦게 승인됐다. 여성 제1저자의 논문 심사기간 중앙값은 101일로 남성 제1저자의 논문 94일보다 유의미하게 길었다. 여성 교신저자의 논문 역시 심사기간이 115일로 남성 교신저자의 논문 102일보다 오래 걸렸다.
제1저자와 교신저자가 모두 여성인 논문의 심사기간 중앙값은 118일로, 둘 다 남성인 논문 심사기간 103일보다 길었다. 오직 여성으로만 구성된 연구진의 논문 심사기간 역시 99일이 걸려, 모두 남성으로만 구성된 팀의 논문 심사기간 90일보다 유의미하게 길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여성이 작성한 논문은 더욱 불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성별뿐 아니라 국적으로 인한 편향성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출신 국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낮을수록 논문 심사는 더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세계은행(World Bank) 기준 저소득 국가로 분류된 곳의 제1저자 논문은 심사기간 중앙값이 122일로, 나머지 국가들의 중앙값 97일보다 25.8% 더 길었다. 저소득 국가 출신 교신저자의 논문은 심사기간 중앙값이 140일에 달해, 나머지 국가들보다 44.3% 더 길었다.
연구진은 학술지 편집자와 심사위원들이 여성의 논문에 편견을 갖고 더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상위 연구 기관에 진입한 여성이 많지 않고, 여성 연구자가 다루는 주제가 생소하게 느껴지기 쉽다는 분석이다. 여성 연구자들이 더 많은 가사노동과 행정·강의 업무를 부담하고 있으며, 남성 연구자들보다 경력이 짧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구진은 “한 여성의 커리어 전체에 걸쳐 이런 승인 지연이 누적되면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라며 “50편의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여성은 남성 동료에 비해 리뷰와 편집 결정을 기다리거나 원고를 수정하는 데 평균 350~750일을 더 쓰게 되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여성 연구자들이 경험하는 더 긴 심사시간은 왜 그들이 남성 연구자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적은 수의 논문을 발표하는지를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해준다”라고 덧붙였다.
국내 과학계 일각에서는 여성이 작성한 논문이 더욱 발전적인 검토를 받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리뷰 지연은 일부 심사자들이 여성 저자에게 신중하고 격려적인 피드백을 준 ‘긍정적 차별’의 결과일 가능성마저 있다”라며 “여성 저자 논문 인용률이 더 높다는 일부 선행 연구도 이 가능성을 뒷받침한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박 교수는 “진짜 문제는 나라별 GDP 효과”라고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저소득 국가 저자들의 25~44% 지연은 7~14%의 성별 효과와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명백한 지역·언어·문화·인종 편향을 증명한다”라며 “과학계에 큰 객관성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성별과 국가에 따른 과학계의 편향성을 교정하는 제도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홍진규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과학기술 분야는 여성 비율이 낮은 영역이 적지 않다”라며 “성별 이슈에 더해 연구자의 국적, 소속 기관, 경력 단계 등 다층적인 정체성이 심사 및 편집 과정에서 암묵적 편향의 단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지속시켰다”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SAGER 가이드라인’을 선례로 제시했다. 이는 2016년 유럽과학편집자협회(EASE)의 젠더 정책 위원회가 제정한 규정이다. 연구 설계와 결과 분석 전반에 생물학적 성별(Sex)과 사회문화적 젠더(Gender)의 차이를 체계적으로 보고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이 골자다.
홍 교수는 “일부 주요 출판사와 저널이 출판 과정에서 성별 대표성 및 편집·심사 단계의 지표를 공개하며 점검을 시도하고 있다”라며 “최근 공개된 네이처 포트폴리오(Nature Portfolio)의 보고서는 편집 및 심사 결정 단계에서 여성 저자에 대한 명시적인 차별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여성 교신저자의 투고 비중 자체가 현저히 낮아 대표성 격차가 있음을 시사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 설계 단계부터 성별 및 젠더 관점을 체계적으로 반영하는 SAGER 가이드라인은 출판 윤리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라며 “국내서도 국내 고유의 연구·출판 환경을 반영한 가이드라인 마련과 더불어 제도의 효과성 평가를 토대로 학술지 평가 기준에 형평성·투명성 관련 지표를 보완하고 그 효과를 측정할 방법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