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걸려온 SOS 전화…공무원 지킨 건 ‘사람을 상대해 본 사람’이었다

수원시 ‘특이민원대응전문관’ 1년, 폭언·협박에 혼자 두지 않는 행정이 작동했다

▲박도신 갈등조정관(왼쪽)과 김원규 특이민원대응전문관이 수원시 새빛민원실 앞에서 함께하고 있다. (수원특례시)
“얼마나 괴로웠으면 밤 9시에 전화를 걸었을까.”

김원규 수원시 특이민원대응전문관은 지난해를 이렇게 기억했다. 한 구청 당직실에서 폭언을 퍼붓는 민원인을 상대하던 공무원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구조 요청을 한 순간이었다. 행정 매뉴얼에도, 조직도에도 쉽게 등장하지 않는 전화였지만, 수원시는 그 전화를 받을 준비가 돼 있었다.

9일 수원특례시에 따르면 2025년 1월, 수원시는 전국 지방정부 가운데 처음으로 ‘특이민원대응전문관’ 제도를 도입했다. 폭언·협박·모욕·성희롱 등으로 공무원이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 개인이 아닌 조직 차원에서 대응하겠다는 선언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이 제도는 단순한 보호 장치를 넘어 행정의 태도 자체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원 578건, 결국 공무원 2명 사직”…숫자가 말해준 한계

제도 도입의 배경은 분명했다. 수원시인권센터가 2023년 실시한 공직자 인권침해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66.9%가 ‘특이민원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폭언(60.7%), 부적절한 호칭(48.5%), 반복 민원(43.2%)이 뒤를 이었다.

사례는 더 심각했다. 한 민원인은 불법주정차 단속에 항의하며 열흘 넘게 당직실을 찾아와 고함과 욕설을 이어갔고, 전화 폭언만 40여 차례에 달했다. 또 다른 민원인은 2022년부터 22개 부서, 공무원 46명에게 578건의 민원을 제기했고, 이 과정에서 공무원 2명이 결국 사직했다. ‘친절행정’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이 감내해야 했던 한계였다.

△경찰 35년 경력 전문관 “그들은 민원인이 아니라 위법행위자”

수원시는 해법을 ‘사람’에서 찾았다. 경찰 경력 35년의 김원규 특이민원대응전문관, 그리고 갈등조정 경험을 쌓아온 박도신 갈등조정관이 전면에 섰다.

박도신 조정관은 특이 민원을 “단순한 불만 제기가 아니라 위법행위와 공무방해가 수반되는 사안”으로 규정한다. 그는 “폭언과 반복적 괴롭힘은 그 정도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며 “행정은 관용이 아니라 법과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원규 전문관의 원칙도 분명하다. 공무원이 도움을 요청하면 즉시 실태를 파악하고 민원인을 직접 면담한다. 상당수는 이 단계에서 중단된다. 면담 이후에도 반복될 경우 고발 조치로 이어진다. 고발장 작성부터 경찰 조사 동행까지, 공무원이 홀로 감당하지 않도록 절차 전반을 지원한다.

실제 밤 9시 SOS 전화 사례에서도 김 전문관은 민원인을 직접 만나 행위의 위법성을 설명했고, 이후 민원은 중단됐다.

▲박도신 갈등조정관(왼쪽)과 김원규 전문관이 민원 대응과 관련해 수원시 공무원과 면담하고 있다. (수원특례시)
△34건 접수·25건 종결…“혼자 두지 않겠다”는 신호

2025년 한 해 동안 접수된 특이민원은 34건. 이 가운데 25건이 종결, 2건은 법적 대응으로 이어졌고, 7건은 조사·사후관리 중이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메시지다. “혼자 대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가 조직 전체에 전달됐다.

제도는 교육으로 확장됐다. 두 전문관은 지난해 6~11월 구청과 44개 동 행정복지센터를 돌며 1200여 명의 공무원을 대상으로 실무교육을 진행했다. 특이민원 대응 절차, 법적 조치, 증거 확보 방법을 구체적으로 공유했다. 56개 민원실에서는 모의훈련도 실시됐다.

공무원들에게 반복된 조언은 단순했다. “녹음하고, 기록을 남기라.” 감정이 아닌 증거로 대응하라는 주문이었다.

△“공무원을 괴롭히는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

박도신 조정관은 신규 공무원 교육에서 이렇게 말했다. “특이민원인을 만나면 언제든 연락하라. 공무원을 괴롭히는 사람은 그냥 두지 않겠다.” 이 말은 현장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얻었다. 보호받고 있다는 감각, 그것이 제도의 가장 큰 성과였다.

수원시는 이 제도로 행정안전부 ‘민원행정 발전 유공(민원처리담당자 보호)’ 대통령상을 받았다. 제도의 상징성은 분명하다. 민원을 ‘무조건 참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법과 질서 안에서 관리해야 할 영역으로 재정의했다는 점이다.

△행정의 품격은 ‘누굴 지키느냐’에서 드러난다

수원시 특이민원대응전문관 제도는 민원인을 적으로 돌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다. 성실한 시민과, 행정을 마비시키는 위법행위를 구분하겠다는 선언이다. 그리고 그 선언의 중심에는 “공무원을 혼자 두지 않겠다”는 명확한 태도가 있다.

밤 9시에 울린 전화는 우연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받을 것이라는 신뢰, 그리고 실제로 받아온 1년의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 행정의 품격은 구호가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누구 편에 서느냐로 증명된다. 수원은 그 질문에 분명한 답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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