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문인 주자청의 말처럼 ‘거미줄만 한 흔적이라도 남겼을까 싶은’ 연말에 다시 이 ‘깜찍한 인사’가 떠오른 것은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표한 ‘2025 한국 부자 보고서’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는 47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2011년 13만 명 수준이던 부자 수가 15년 만에 약 3.7배로 늘어난 것이다. 연평균 증가율은 10% 안팎에 달한다. 이들이 보유한 총 금융자산은 무려 3066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같은 기간 매년 평균 7% 이상 불어났다.
숫자만 놓고 보면 김정은의 ‘마법’이 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통계의 이면에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 부의 증가는 고르게 퍼지지 않았다. 부자 수는 전체 인구의 1%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부자의 70% 가까이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자산 축적의 속도 역시 일반 가계와는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린다. 2015년 보고서를 보면 당시 부자는 18만2000명, 총 금융자산은 406조 원이었다. 10년 만에 부자 수는 2.6배, 금융자산은 7배 이상 늘어난 셈인데 부자들이 더 부를 쌓는 동안 가만 앉아서 ‘벼락 거지’ 신세를 면치 못했을 이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질 듯하다.
문제는 이 간극이 다음 세대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층 고용 상황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실직 상태이거나 취업을 준비 중이거나, 별다른 활동 없이 쉬고 있는 이른바 ‘일자리 밖’ 20·30대가 지난달 160만 명에 육박한다. 체감 청년실업률은 공식 통계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바늘귀 같은 취업문에 첫 직장 진입 연령도 갈수록 늦어지고 있다. 자산 형성의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보니 근로소득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격차가 구조화되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있다. 보고서는 부자들의 부의 축적이 사업소득, 금융투자, 상속·증여 등으로 ‘부의 다변화’ 양상이 있다고 분석했는데 이는 동시에 기회의 불균등으로도 대치된다.
그럼에도 보고서가 전하는 메시지가 차갑기만 한 것은 아니다. 부자들이 꼽은 성공 조건 1순위는 ‘지속적인 금융지식 습득’이었다. 또 단기 투기보다 장기적 안목, 위기를 기회로 보는 태도, 분산과 절제를 꼽는다. 이는 특정 계층만의 덕목이라기보다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할 자산이다. 양극화 해법 역시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육과 금융 접근성, 공정한 기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넓히는 일 말이다.
크리스마스다. 누군가는 풍성한 자산 보고서를 펼치고 누군가는 다음 달 월세를 걱정하는 게 현실이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격차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줄이기 위해 연대할 것인가.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다시 진심이 되기 위해선 단순한 숫자의 증가가 아니라 기회의 확산이 중요하다. 감사와 위로의 인사 한마디 건네는 게 사치인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마스 이브만큼은 따뜻한 온기가 돌았으면 좋겠다.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김동선 에디터 겸 사회경제부장 matthe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