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금융배출량 플랫폼' 이달 말 가동…실측 데이터 부실 '반쪽 출발' [금융배출량 민낯]

신정원, '기후금융 TF' 핵심 과제 1년 만에 결실…EFAS에 기후 DB 탑재
PCAF 로직 일괄 적용해 중복 투자 방지…억단위 개별 구축비 절감 기대
기업 실측 데이터 부족에 ‘매출·원가 추정치’ 의존 불가피…정확도 한계 여전

금융위원회와 한국신용정보원(신정원)이 조만간 은행권 '금융배출량 플랫폼(가칭)'을 본격 가동한다. 은행마다 제각각이던 산정 방식을 국제 표준으로 통일하고 시스템 구축 비용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플랫폼을 채울 기업들의 실측 기후 데이터가 부족하고, 정확도가 떨어지는 추정치에 의존하는 등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후 데이터 관리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용두사미'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정원은 이달 말 은행권 금융배출량 산정 플랫폼을 공개한다. 이는 작년 12월 금융위가 발족한 '기후금융 TF'의 핵심 과제로 개발 추진 1년여 만의 성과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을 시작으로 향후 전 금융권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금융배출량은 금융사가 대출·투자 등 자금을 공급한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금융사 몫(Scope 3)으로 할당한 개념이다. 통상 금융사 전체 배출량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이를 정확히 측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탄소중립 달성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플랫폼은 신정원의 기존 기업신용정보시스템(EFAS)에 기후 데이터베이스(DB)를 탑재하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은행 실무자가 차주(기업) 정보를 입력하면 시스템이 국제 기준인 탄소회계금융협회(PCAF) 산정 체계에 맞춰 배출량을 자동 산출하는 구조다.

이번 플랫폼의 가장 큰 기대 효과는 '비용 절감'과 '표준화'다. 그간 주요 시중은행들은 금융배출량 산정을 위해 수억 원의 비용을 들여 컨설팅사에 요청해 자체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신정원 관계자는 "은행마다 산정 기준이 달라 데이터 비교가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표준화된 로직을 제공함으로써 중소형 은행들의 비용 부담을 덜고 데이터 일관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플랫폼'은 완성됐지만 이를 채울 데이터가 부실하다는 점이다. 정확한 금융배출량 산정을 위해서는 대출받은 기업의 실제 배출량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비상장사는 인력과 비용 문제로 배출량 측정 자체가 쉽지 않다.

플랫폼 역시 기업의 실측이 없을 경우 매출액이나 원재료 비용, 에너지 사용량에 산업별 평균 배출 계수를 곱해 역산하는 '추정치' 방식을 활용한다. 다만 이 경우 실측치와 괴리가 생기는 ‘데이터 왜곡’이 발생해 기존 금융배출량을 기반으로 세운 은행권의 탄소 감축 목표 자체가 수정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추정치에 근거하기에 금융배출량 데이터 품질은 여전히 낮다. 2월 자본시장연구원이 발간한 ‘금융기관의 지속가능성 공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금융기관의 금융배출량 데이터 품질 점수는 5점 만점에 평균 3.6점 수준으로 나타났다. PCAF 기준상 점수가 높을수록 실측치가 아닌 추정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융배출량의 신뢰도가 아직은 ‘추측’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플랫폼 가동 이후 ‘데이터 신뢰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추정치는 어떤 모델과 변수를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데 그 과정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으면 비교와 평가가 왜곡될 수 있다”며 “매출액·원재료 비용 등 재무제표에 기반한 추정은 저탄소 원재료를 사용하는 기업의 실질적인 감축 노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시중은행 환경ㆍ사회ㆍ지배구조(ESG) 담당자는 "기초 데이터인 중소기업의 실측 정보가 없다면 플랫폼은 단순 '추정치 계산기'에 그칠 수 있다"며 "중소기업들이 스스로 배출량을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유인책을 마련하고 실측 데이터 비중을 점진적으로 높여가는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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