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재해경보·농림위성까지…위험 줄이는 데이터 농정
디지털 육종·밭농업 기계화로 연구 성과 현장 안착

“농업은 이제 경험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산업이 됐습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없이는 농가 소득도, 생산 안정도 지키기 힘든 구조입니다.”
이승돈 농촌진흥청장은 최근 농업의 현실을 이렇게 진단했다. 30년 가까이 농업과학기술 연구 현장을 지켜온 그는 취임 이후 줄곧 ‘AI 농업 전환’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농업의 의사결정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농진청이 제시한 목표는 분명하다. 농가 소득 20% 향상, 농작업 위험 20% 경감, 기술 개발·보급 기간 30% 단축이다. 추상적인 비전이 아니라, 성과를 숫자로 관리하겠다는 접근이다. 이 청장은 “농업인은 결과로 정책을 평가한다”며 “연구 성과가 현장에서 소득과 안전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투데이는 농가소득·안전·수급 안정을 동시에 겨냥한 AI 농정의 설계와 실행 로드맵에 대해 이 청장에게 들어봤다.
이 청장은 연구직 공무원으로 농진청에 몸담은 지 30년 가까운 ‘정통 연구자’ 출신이다. 작물 생리, 재배 기술, 현장 실증을 두루 거치며 실험실과 시험포, 농가를 오갔다. 이런 그가 조직 전체를 이끄는 청장 자리에 오른 것은 연구 성과를 정책으로 완결시키라는 시대적 요구와 맞닿아 있다.
이 청장은 연구자 출신이라는 이력을 ‘강점’이 아니라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연구와 현장 사이의 간극, 기술은 준비됐지만 전달 방식과 속도 문제로 현장에서 외면받는 사례를 수차례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현장에서 쓰이지 않는 기술은 실패한 기술”이라며 “농업인이 직접 써보고 효과를 느끼는 단계까지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가 청장으로 부임한 시점은 농업이 구조적 전환을 요구받는 국면과 맞물렸다. 농가 수는 급감했고, 농업인 고령화는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기후변화는 예외가 아닌 상수가 됐고, 이상기상으로 인한 생산 불안은 수급과 물가로 직결된다.
이 청장은 농업을 “국민 생활과 국가 리스크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산업”으로 규정하며 과학기술 기반 대응의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이 청장이 제시한 해법의 중심에는 AI가 있다. 농진청은 ‘농업과학기술 AI 융합 전략’을 통해 농업 전 주기에 AI를 접목하고 있다. 생산·경영·재해 대응·연구개발까지 예외는 없다.
이 청장은 AI를 단순 자동화 기술로 보지 않는다. 그는 “농업의 본질은 의사결정의 연속”이라며 “언제 파종하고, 언제 방제하고, 언제 수확하느냐가 소득을 좌우한다”고 설명했다. AI는 농업인의 판단을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판단의 정확도와 속도를 높이는 도구라는 인식이다.
이달 11일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도 AI 기반 분석을 연구 설계 단계부터 적용해 실패 가능성을 줄이고, 성과가 검증된 기술은 곧바로 현장 실증과 보급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제시됐다.
이 청장은 “기술이 늦게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 정책 신뢰는 떨어진다”며 연구·보급의 시간차를 줄이는 것을 핵심 과제로 강조했다.
이 청장의 AI 농정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는 대국민 AI 농업 비서 ‘AI 이삭이’다. 이삭이는 연중 농사 계획 수립부터 작목 선택, 생육 관리, 병해충 대응, 수확 이후 경영 분석까지 농업 전 과정을 지원하는 올타임(All-time) 농업기술 서비스다.
이 청장은 “농업인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라며 AI 이삭이가 농업인의 ‘오늘의 판단’을 돕는 구조로 설계됐다고 설명했다. 생성형 AI가 농가소득 조사 자료와 축적된 기술 데이터를 학습해 농가별 상황에 맞는 판단을 제시한다. 농진청은 이를 통해 평균 경영비 5% 절감을 유도하고, 2026년까지 적용 농가를 1000곳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시설농업 분야에서는 차세대 온실종합관리 플랫폼 ‘아라온실’이 핵심 축이다. 온도·습도·이산화탄소·일사량 등 환경 데이터와 작물 생육 정보를 통합 관리해 생산성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높인다. 이 청장은 “온실은 데이터가 가장 잘 쌓일 수 있는 공간”이라며 “AI 전환 효과가 가장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농업의 가장 큰 위협으로 노동력 부족과 안전 문제를 꼽는다. 농가 수는 2015년 257만 가구에서 지난해 97만4000가구로 줄었고, 65세 이상 농업인 비중은 이미 55.8%에 달한다.
이에 농진청은 자동조향 장치, 방제·운반 로봇 등 농업로봇 보급을 확대하고 있다. 제초 작업은 사람이 5일 걸리던 일을 로봇이 8시간 만에 수행하고, 방제 작업 효율은 최대 5배까지 향상됐다. 연간 인건비 절감 효과는 30~50%에 이른다. 이 청장은 “로봇은 생산성 기술이자 동시에 안전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 대응도 한층 정밀해졌다.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서비스는 전국을 30m×30m 격자로 나눠 필지 단위 맞춤형 예보를 제공한다. 11개 기상 요소를 바탕으로 동해·냉해·고온장해·수해 등 15종 재해 위험을 사전에 안내하고, 대응 행동까지 연결한다. 이 청장은 “예보에서 끝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질 때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이 말하는 농업 대전환은 현장 기술 보급에만 머물지 않는다. 연구개발(R&D) 방식 자체를 바꾸는 데까지 확장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디지털 육종이다. 농진청은 기후변화로 작물 생육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기존 육종 방식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데이터와 AI를 결합한 새로운 육종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농진청은 2025년까지 국가 디지털 육종 플랫폼을 구축하고, 2027년까지 59개 품목에 대한 유전체·표현체 등 표준화된 육종 데이터를 축적해 민간과 공유할 계획이다. 동시에 품종 개발에 필요한 핵심 형질 분자마커를 442개 수준까지 확대하고, AI 예측 모델과 스피드 브리딩 기법을 결합해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이겠다는 구상이다. 이 청장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품종 개발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밭농업 기계화도 중요한 과제다. 현재 밭작물 기계화율은 67% 수준으로 논농업과 큰 격차가 있다. 특히 파종·정식과 수확 단계는 여전히 인력 의존도가 높다. 농진청은 2027년까지 마늘·양파 등 주요 8개 밭작물을 대상으로 파종부터 수확까지 전 과정 기계화를 가능하게 하는 20종 이상의 핵심 농기계와 재배 기술을 개발해 임대사업과 연계 보급할 계획이다.
이 청장의 구상은 개별 기술을 넘어 농업의 위상을 바꾸는 데 닿아 있다. 2026년 발사가 예정된 차세대 중형 농림위성은 전국 농경지를 3일 주기로 관측해 주요 작물 재배면적과 출하량을 예측한다. 수급 불안과 가격 급등락을 사전에 완화하기 위한 핵심 인프라다.
업무보고에는 위성 데이터와 AI 분석을 결합한 수급 예측 고도화, 정책 의사결정 지원 체계 구축이 주요 과제로 담겼다. 이 청장은 “농업도 이제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설명돼야 한다”며 “그래야 정책도 설득력을 가진다”고 밝혔다.
그의 AI 농정은 결국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한다. 기술을 위한 기술이 아니라 농업인이 실제로 체감하는 성과를 만드는 기술이다. AI 이삭이가 판단을 돕고, 로봇이 노동을 덜며, 조기경보와 위성이 재해와 수급 불안을 앞당겨 막는 구조다. 이 청장이 설계한 농업 대전환은 이제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