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없는 일차의료, 지속 가능성 한계”…체계 개편 촉구

복지부, 내년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 시행

▲국회에서 열린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 국회 토론회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노상우 기자 nswreal@)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과 만성질환 증가로 보건의료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지역사회 기반의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일차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료계는 현행 일차의료 체계가 의료진의 희생에 의존하고 있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진다며, 구조적 개선을 위한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충형 대한의사협회 의무이사는 1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지역사회 기반 일차의료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현재 일차의료는 의료진 개인이 ‘자신을 갈아넣는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이런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의사가 희생하지 않아도 작동하는 체계와 합리적인 수가가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무이사는 일차의료를 전면적인 재편의 대상으로 보기보다, 기존 성과를 인정하고 필요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예방접종률과 건강검진율, 고혈압·당뇨 치료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며, 예방 가능한 입원율도 평균 이하로 낮아졌다”며 “병상이 많아 입원이 쉬운 구조임에도 이 같은 성과를 냈다는 점은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초고령사회로 전환되며 의료 수요의 성격이 바뀌고 있는 만큼, 변화된 환경에 맞춰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방식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자 측면의 유인 설계가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의무이사는 “환자에게 과감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일차의료기관을 적절히 이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며 “불필요한 종합병원 이용에 대해서는 패널티 부과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좋은 의사와 좋은 의료기관은 제도가 아니라 환자가 만든다”고 강조했다.

강재헌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은 주치의 역할의 명확화와 위험도 기반 보상체계 구축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그는 “일차의료는 단순한 의원급 진료가 아니라 예방 상담, 예방접종, 만성질환 관리, 재활 관리 등 10가지 이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며 “환자 분류체계에 따라 관리 강도와 보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아주 고령이거나 위험도가 높은 환자는 관리 부담이 크지만, 현행 구조에서는 기피될 수밖에 없다”며 “위험도와 연령에 따른 관리료 차등이 명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인 인프라 부족도 주요 쟁점으로 제기됐다. 강 이사장은 “일차의료기관 간 전자의무기록(EMR) 통합이나 효율적인 정보기술(IT) 연계 플랫폼이 충분하지 않다”며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정비하지 않으면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조현호 대한내과의사회 기획부회장은 재정 구조와 의료비 관리 측면에서 일차의료 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종합병원 이상 의료비는 3.5~4배 증가한 반면, 의원급 의료비 증가는 1.8배에 그쳤다”며 “경증질환 환자가 상급병원을 이용하는 구조가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동네의원이 재택의료를 통해 장기간 환자를 관리하면 비용도 적게 들고 환자 파악도 빠르다”며 “환자등록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재명 정부는 ‘일차의료 기반의 건강·돌봄으로 국민 건강 증진’을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사는 곳 중심의 일차의료체계 구축, 다학제팀 기반의 포괄적 건강관리 제공과 성과에 따라 보상하는 지역사회 주치의 모델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박은정 복지부 지역의료혁신과장은 “지역별로 다양한 일차의료 모델을 바탕으로 작동 가능한 한국형 모델을 만들겠다”며 “국민과 의료기관 모두가 신뢰하고 참여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일차의료 구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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