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리스·SPC 허용 땐 투자 리드타임 단축…현금흐름 부담 완화
“금산분리 훼손 아냐”…정부, 첨단산업 특례로 선 긋기

정부가 반도체 산업의 ‘투자 속도’를 높이기 위해 43년 만에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한다. 대규모 프로젝트의 자금 조달 구조를 개선해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지주회사·금산분리 규제를 예외적으로 완화하면서 제도 설계와 공정성, 나이가 정책 일관성을 둘러싼 논란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150조 원 규모 국민성장펀드 출범과 함께 반도체 등 첨단산업 대상의 금산분리 완화 조치가 구체화되면서, SK하이닉스의 대규모 투자 자금 조달에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지주회사 규제로 막혔던 외부 자금 유입 통로가 열리면 인공지능(AI) 메모리 증설 경쟁에서 속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16일 ‘2026년 국민성장펀드 운용방안’을 통해 내년 한 해에만 30조 원 이상(30조 원+α)의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반도체 분야에 배정된 금액은 4조2000억 원으로, AI(6조 원)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이번 조치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금산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언급한 이후 구체화됐다. 기획재정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지주회사의 손자회사가 국내 자회사(증손회사)를 둘 경우 지분을 100% 보유하도록 한 규정을 50% 이상이면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해당 규정은 공정거래법에 따라 총수 일가의 과도한 지배력 확대를 막기 위한 장치지만, 기재부는 반도체처럼 대규모·장기 투자가 필수적인 산업에서는 경쟁력 강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제도 변화가 현실화되면 SK하이닉스의 체감 효과는 크다. SK하이닉스는 SK(지주)-SK스퀘어 아래 손자회사 구조로, 그동안 신규 법인이나 투자 목적의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려면 사실상 100% 출자가 필요했다. 지분 요건이 50%로 낮아지면 나머지 50%를 국민성장펀드나 재무적투자자(FI)로 채울 수 있어, 대규모 설비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보다 유연하게 확보할 수 있다.
투자 방식도 달라진다. SPC가 공장과 반도체 장비를 보유하고 SK하이닉스는 이를 장기 임차하는 금융리스 구조가 가능해지면 수십조 원에 달하는 설비투자를 한 번에 집행하지 않아도 된다. 현금흐름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장비 발주와 라인 구축 시점을 앞당겨 AI 메모리 수요 급증 국면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부로서도 기대 효과는 분명하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600조 원), 청주 M15X(누적 42조 원) 등 초대형 프로젝트에 국민성장펀드를 연계하면 재정 부담을 키우지 않고도 민간 투자를 유도할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맞춤형 규제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는 있으나, 반도체는 투자 시기를 놓치면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산업”이라며 “국민성장펀드와 규제 완화를 연계한 방식은 정부 재정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기업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