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푸는데...각종 규제에 거꾸로 가는 K-금융 [역주행 코리아下]

日 금산분리 대폭 완화, 美 RWA 유연화 韓 징벌적 규제
MUFG '무역상사' 뛰는데... 韓 은행 '이자 장사' 내몰려
금리 산정에 정치적 입김도⋯금융 선진국, 시장 원리 철저

국내 금융 산업이 규제에 묶여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회사의 성장동력 확보를 주문하지만 정작 이를 위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에는 소극적이다. 투자 확대를 압박하지만 위험가중치(RWA) 규정은 여전히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시장 원리에 맡겨야 할 저신용자 금리 결정에도 개입해 왜곡시키고 있다. 미국·일본 등 해외 선진국이 자율성과 시장 원리를 토대로 혁신 속도를 높이고 모험자본 생태계를 확장하는 사이 한국은 오히려 역주행하며 금융 경쟁력 격차를 스스로 벌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기 위해 개선이 시급한 국내 금융시장의 과제는 크게 투자ㆍ성장ㆍ금리 등 세 영역으로 압축된다.

금산분리 규제는 국내 금융사의 투자와 성장을 가로막는 대표적 장벽이다.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등 은행권의 과도한 이자이익 의존을 지적하며 비이자 수익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비금융 분야 진출은 금산분리 원칙에 가로막혀 제약을 받고 있다. 현행 은행법상 은행은 비금융사 지분을 15% 이상 보유하면 자회사로 분류돼 사실상 경영권 행사가 불가능하다. 단순 투자는 가능해도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술 내재화와 사업 확장이 원천 차단되는 셈이다.

반면 금산분리의 원조 격인 일본마저 우리나라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다. 일본은 2021년 은행법을 개정해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 기여하는 업무라면 은행이 비금융 회사 지분을 100%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후 미쓰비시UFJ은행(MUFG)은 무역·재생에너지 사업에 뛰어들어 일본 최대 메가뱅크 입지를 굳혔고, 후쿠오카파이낸셜그룹(FFG)은 제조업 중개 플랫폼 등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자본규제도 은행의 투자 역량을 제한한다. 국내에서 골드만삭스, JP모건 같은 초대형 투자은행(IB)이 탄생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포지티브 규제’와 모험자본에 대한 ‘징벌적 자본 비용’ 구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내에서는 벤처펀드 등 모험자본 지분 투자에는 최대 400%의 RWA가 적용된다. 앞서 정부는 9월 생산적금융 활성화를 위해 비상장주식 보유 시 RWA를 400%에서 250%로 낮췄다. 하지만 3년 미만 단기 투자와 벤처캐피탈 투자는 기존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금융권이 바라는 기업대출에 대한 RWA 유연화는 계속 검토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적극적인 투자 확대 요구와 달리 규제 개선에는 소극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미국은 네거티브 방식(금지한 것 빼고 다 허용)를 통해 금융사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한다. 미국은 은행이 중소기업투자회사(SBIC)나 지역사회개발 사업에 지분 투자를 할 경우 이를 고위험 자산이 아닌 일반 기업대출과 동일하게 취급해 RWA 100%를 적용한다. 한국이 벤처 투자를 투기로 간주해 최대 400%를 부과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인프라 투자에 대해서도 은행 자체 리스크 평가 모델을 폭넓게 인정해 RWA를 유연하게 낮춰줌으로써 상업은행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초대형 IB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 주고 있다.

‘관치 금융’의 그늘도 여전히 짙다. 신용도가 높을수록 금리가 낮아지는 ‘리스크 기반 가격결정’ 대신 정치적 압박이 금리에 반영되고 있다.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이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현재 금융제도는 가난한 사람이 비싼 이자를 강요받는 ‘금융 계급제’라고 질책한 이후 금리 왜곡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저신용자의 신용대출(신규취급액) 금리가 고신용자보다 낮고, 대기업 금리는 오르는데 중소기업 금리는 떨어지는 등 금융시장 기본 원리와 맞지 않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미국과 영국 등 금융 선진국은 금리 결정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대신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접근한다. 영국은 채무유예제도(Breathing Space)로 채무 조정에 들어간 저신용자에게 이자를 동결해준다. 미국 역시 재정을 투입한 직접적인 현금·현물 복지로 취약계층을 지원한다.

한국금융연구원 관계자는 “당국은 업무 연관성을 따지는 낡은 관행에서 벗어나 은행의 혁신에 대해서는 자율성을 보장하고 자본 적정성과 소비자 보호 등 리스크 관리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규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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