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보편 지원은 한계...업력 7년 이하·생산성 높은 기업에 '돈줄' 집중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방식을 현행 매출액 중심에서 '업력'과 '생산성' 중심으로 전환할 경우, 예산을 늘리지 않고도 국내총생산(GDP)을 최대 0.7% 끌어올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8일 발표한 '우리나라 중소기업 현황과 지원제도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현행 중소기업 지원정책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며 이같이 밝혔다.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9%, 고용의 80.4%를 차지하며 양적으로 우리 경제의 핵심 기반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생산성과 역동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취약한 모습을 보이며 경제 전체의 성장 동력으로 기능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제조업 노동생산성은 대기업의 약 32% 수준으로 OECD 평균인 55%에 크게 못 미치며, 자본생산성 또한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이러한 한계의 원인 중 하나로 현행 지원제도의 '규모 의존적' 기준을 지목했다. 현재 정부 지원은 생산성과의 연관성이 낮은 매출액 등 단순 규모 지표에 주로 의존해 선별보다는 보편 지원에 가까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을 효과적으로 가려내지 못하고 자원 배분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중소기업 자격요건이 정부의 지원과 규제를 가르는 '문턱'으로 작용하면서, 기업들이 성장을 회피하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진입하는 비율은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반면, 중견기업이 다시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는 사례는 2017년 197개에서 2023년 574개로 급증해 성장 사다리가 약화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정부의 금융지원이 부실기업의 연명을 도와 '한계기업(좀비기업)'을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지원은 폐업 확률을 낮추는 등 단기적 생존에는 기여했으나, 생산성이나 수익성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오히려 지원 확대가 한계기업 발생 확률을 높이고, 이들 기업이 시장에 장기 체류하면서 정상기업의 성과를 저해하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낳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과도한 정책금융 의존이 민간금융을 밀어내는 '구축효과(crowding-out)'도 확인됐다. 실증분석 결과 정책금융 이용 확대는 민간금융을 통한 자금조달 확률을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정부 지원이 민간의 자생적 금융 생태계 발전을 저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은행은 일반균형 모형 분석을 통해 지원 대상을 '매출액 기준'에서 '업력 기준'으로 전환할 경우의 경제적 효과를 추산했다. 지원 자금을 생산성이 높은 저업력(창업 7년 이하) 기업으로 재배분하면 총생산이 약 0.4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저업력 기업일수록 자본생산성이 높다는 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것으로, 업력 기준 도입 시 피터팬 증후군 완화 효과도 포함된다.
또한 구조조정 제도를 효율화해 부실기업의 적시 퇴출을 유도할 경우 추가적인 성장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구조조정 비용을 낮춰 효율성을 미국이나 일본 수준으로 개선하면, 총생산이 0.23% 증가하고 한계기업 비중은 0.23%p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즉, 예산을 늘리지 않고 지원 대상과 방식만 바꿔도 총생산을 약 0.4~0.7% 높일 수 있다는 결론이다.
최기산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 과장은 "분석된 0.7%의 수치는 연간 경제성장률이 아닌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제고 효과를 의미한다"며,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글로벌 메가트렌드에 대응하기 위해 중소기업의 혁신과 성장이 필수적"이라며 이번 연구의 배경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향후 정책 방향으로 선별 기준의 정교화와 민간 역량 활용을 제안했다. 매출이나 자산 등 단순 규모 기준보다는 생산성, 혁신 역량, 업력 등 질적 지표를 핵심 선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민간의 심사 및 투자 역량을 적극 활용해 유망 기업을 발굴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성장 친화적' 제도 설계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피터팬 증후군을 방지하기 위해 업력 등 기업이 인위적으로 조작하기 어려운 보완 지표를 활용하고, 성장 단계별 맞춤형 지원과 성과 연계 인센티브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는 기업이 지원 안주보다는 자율적인 성장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중소기업에 특화된 구조조정 제도 마련도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최 과장은 "회생 가능한 기업은 신속히 정상화하고, 회생이 어려운 기업은 적시에 정리되도록 구조조정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일본의 사례처럼 민간과 공공이 참여하는 제3자 구조조정 기구 도입 등을 검토해 자산 매각과 시장 정리를 원활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분산된 지원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원스톱 통합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현재 부처와 기관별로 흩어져 있는 지원 정책과 정보를 통합해 기업의 접근성을 높이고, 중복 지원을 방지하여 정책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 과장은 "향후 중소기업 지원제도는 지원 사업의 수나 예산 규모 같은 '양'을 늘리기에 앞서 대상 선별이나 인센티브 구조 개선을 통해 생산성과 역동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다"며, "이를 통해 중소기업이 우리 경제의 진정한 성장과 혁신의 핵심 축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